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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Nov 14. 2024

058. 눈 뜨면 네가 보이는, 특권

피곤에 쩌든 육아맘을 간신히 위로하는 긍정



피곤하다. 육아맘은 피곤하다.

육아라는 수식어를 언제까지 쓰는 걸까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아이가 완전히 독립된

수면과 동선을 갖게 되는 때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수면에 대해 좀 이야기해볼까 한다.


수면.

언제까지 아이와 함께 수면을 하는가는

집집마다 천차만별이다.

아이와 부모, 개개인의 성향도 있고

집안 분위기도 있으며 어떤 상황도 있다.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딱 맞아떨어져서

너 수면 독립!

할 때 육아맘의 임무 중 본능적 욕구를

지치게 하는 임무 하나가 사라진다.

바로 수면욕이다.


모든 양육자는 아이가 수면 독립을 할 때까지

수면욕을 억누른다.

적군 포로의 고문으로도 활용하는

수면욕을 자식을 위해 누르고 참는 것이다.


신생아 시기 아이의 작은 뱃골을 세심하게 채우기 위해

양육자는 두 시간에 한번 아이를 먹인다.

말이 두 시간에 한 번이지 새벽에 의무적으로

4번을 깬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12시부터 6시까지로 가정했을 때)


그리고 운이 좋아 통잠을 자더라도

아이의 곁은 엄마의 몫이다.

누군가와 함께 수면에 드는 컨디션은

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갖게 마련이다.

더욱이 그게 아이와 엄마의 관계라면 더하다.


"우리 집은 일찍 수면 독립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언제 열이 날지 모르고

언제 악몽을 꿀지 모르며 또 언제 변덕을 부릴지

아무도, 아무도 모른다.

이건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모른다.


자랑이자 푸념을 해보자면

나는 잠귀가 아이들에게 특화되어 있다.

첫째는 수면독립을 했고 둘째는 끼고 잔다.

그런데 벽 하나 너머 들리는 첫째의 숨소리를 들으면

열이 나는지, 어디가 불편한지, 꿈을 꾸는지 대체로 느낌이 온다.

숨을 씩씩 쉬는지 숨을 쌕쌕 쉬는지

그 소리에 일어나는 나 자신을 보면

내가 돌아봐도 참 기가 막히다.


그만큼 수면 시간에 양육자, 육아맘은 초긴장 상태다.

아마도 그 긴장 상태가 신생아 시절부터

주욱- 이어져 그러려니 하는 것일 뿐.


얼마 전 친정집에서 내가 급체로 앓았을 때

60도 훨씬 넘은 친정엄마가 "아이고 니 어디 아프나."

하며 새벽녘 내가 자는 방으로 오신 적이 있다.


내 나이가 벌써 39인데도 불구하고

공기 중에 느껴지는

희미한 아픔을 감지하는 엄마의 능력이라니.


횡설수설을 거두절미하고


나이에 관계없이

오늘 밤 또다시 자식 덕분에 피곤할 엄마들에게

단 하나 긍정적인 면을 찾아 선사해볼까 한다.


그래도 내 곁에 네가 잠들어 있는 나날들 동안에는

눈 뜨면 네가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지만

적어도 네가 잠든 시간,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그 얼굴,

내가 눈 감아도 보고 싶은 그 사랑스러운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그 시간만큼은 내 수면과 바꿔 살 수 있다는 것을.


절반은 애틋하고 절반은 열받는 마음을 품고

오늘도 몸을 누이려 한다.


아,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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