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딸의 한마디에 다시, 기록을 시작하다
바쁘면서 게으른 엄마 5년 차. 여느 날과 똑같은 아침생뚱맞게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몇 살이야?"
순간 멍해졌다. 무림 고수들이 흔히 말하는 깨달음의 상태가 아니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수한 백지상태로 멍해졌다.
"음... 어... 서른여덟 살이네?"
"서른여덟 살이면 나이 든 거야?"
"응, 나이가 들었지."
5살 아이가 나를 보며 나이가 들었냐고 한다. 마냥 웃기만 할 수가 없었다.
문득 이 똘망똘망한 녀석을 처음 마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서른네 살이었다.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은 리스트가 있었고 아이가 6개월이 되면 회사에 복직해야지 하는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이런 명언이 있다는 걸. 어떤 계획도 아이의 울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그런 명언이. 복직은 포기했고 위시 리스트 중 반도 하지 못했던 거 같다. 아니 리스트에 뭐가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큰 아이 돌 무렵 정신이 좀 들 찰나에 쓰나미처럼 둘째가 찾아왔다. 내 시간들은 또다시 그 어딘가로 날아갔다.
시간을 잊은 채 5년이 흘렀다. 쪼꼬미들에게서 나를 닮은 모습이 하나 둘씩 나타나자 사라진 내 시간들의 행방도 드러났다. 이 쪼꼬미들이 내 시간을 냠냠 먹으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기 시작하자, 끊어졌던 나의 시간들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주, 아주 조금씩 천천히.
돌아오는 내 시간들을 어떻게 반길까 고민하다가 5년의 공백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육아 이전과 이후 달라진 시선, 느낌, 생각, 경험 등. 그 시간들을 흘려 보내지 말고 붙잡아야 내 시간이 모두 돌아왔을 때 뭘 할지 몰라 허둥대지 않을 거 같다. 엄마 몇 살이야?라는 아이의 물음 뒤에 나는 여태 뭐했지?라는 물음을 남기고 싶지 않다.
엄마의 시간은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흐른다. 지나가버린 후에야 아차하게 된다는 걸 직접 경험하게 전에는 모른다. 우리네 엄마들 얼굴에 아쉬움이 늘 그려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가장 먼저 엄마에게 몇 살이냐는 물음을 던져 준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사랑한다는 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