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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Jul 06. 2023

엄마 딸은 어쩌다 야설 작가가 됐나 1

초등학생 작가, 시작과 동시에 절필하다

가만히 되짚어 보니 소설을 쓴지가 생각보다 오래됐다. 좋아하는 만화의 2차 창작 단편 소설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던 게 2016년 무렵이라고 생각했는데, 폴더를 뒤져보니 블로그에 올렸던 단편 몇 개가 더 발견됐다. 어떤 건 2014년에 처음 올렸다고 적혀있다. (나는 블로그를 옮기더라도 소설을 썼던 날짜를 기록해 두는 편이다)      


그런데 분명 내 기억엔 이것보다 더 전에 썼던 글이 있다. 이번엔 전부터 계속 써왔던 원노트를 켜봤다. 2013년에 썼던 단편 소설이 발견되었다. 이건 심지어 2차 창작도 아니고 순수 창작인 데다 BL도 아니다. 그런 단편이 네 개가 있다. 너무 예전의 글이라 읽기는 망설여지지만, 어떤 내용을 썼는지, 어쩌다 쓰게 되었는지는 모두 기억이 난다. 이걸 쓸 때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날아다녔던 것도.      


그럼 2013년의 소설이 처음인가? 아닌 것 같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올라가고 올라가다 보니 기억 속 나는 초등학생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이만저만 잘하던, 그러나 아주 되바라지고 고집이 센, 똑똑하고 재수 없는 모범생이 되고 싶었던 시절의 나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아니, 4학년인가? 거기까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당시엔 학급마다 다음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기다. 우리 반 반장도 학급 카페를 개설했다.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열심히 글을 올리는 몇 명이 있었고 그중의 하나가 나였다.   

   

자유게시판에 좋아하는 캐릭터의 팬아트를 올렸는데 (검색해서 퍼 온 그림이다. 당시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요만큼도 없었다), 눈이 너무 크다고 비웃는 짧은 댓글에 불필요할 정도로 몹시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당시에는 또한 인터넷 소설이 엄청나게 유행을 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때의 나도 인터넷 소설을 열심히 보았다. 문제는 유행을 다소 이상하게 탔다는 점인데, 너무 유명해서 책으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나온 ‘인소’는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거다. 어렸던 그때부터 심각한 오타쿠였던 나는 인터넷 소설도 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2차 창작 소설만 보았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현대문학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좋은 글들이 많았다. 내 눈엔 그랬다. 하여간에...     


열심히 소설을 보다 보니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일련의 사고 흐름이 왜 학급 카페에 창작 소설을 연재하겠다는 계획으로 흘렀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내 첫 소설은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모 초등학교 5학년 7반의, 혹은 4학년 1반의 학급 카페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2차 창작도 아니고 나름 순수 창작물이었다. 주인공 이름은 송붕이. 아마 스스로 웃긴다고 생각한 이름이었던 것 같다. 내용은 송붕이의 무인도 탈출 이야기다. 당시엔 무인도 탈출 만화가 또 인기이기도 했다. 하여간 유행이랑 유행은 다 따라 하긴 했다. 방향이 좀 이상했지만.      


당연히 학급 카페에 올리는 소설을 읽을 사람은 없었고, 친한 친구 두 명 정도가 “와! 기대댄당!^^” 같은 댓글을 몇 번 올려준 것 외엔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왜인지 모르게 콧대가 높아서, 모두가 나의 소설을 기대해 주길 바랐고, 심지어는 반응이 없는 것에 화를 내기도 했다. 친구에게 왜 댓글을 달아주지 않느냐고 투덜거렸던 기억도 있다. (그다음엔 “미안ㅠ늦게봐썽ㅠㅠ” 같은 느낌의 댓글이 달렸다) 툭하면 내 글에 시비를 걸던 같은 반 남학생도 그 소설만큼은 댓글을 달지 않았다.      


반응이 없으니 영 재미가 없었다. 게다가 딱히 계획적으로 시작한 글이 아니라 뒤 내용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야심 차게 시작한 무인도 탈출 소설은 송붕이가 비행기를 타고 무인도에 막 불시착한 시점에 연재 중단이 되고 만다. 참고로, 소설의 첫 시작은 송붕이가 비행기를 타는 장면이다. 그 짧은 연재 중에도 배운 게 하나 있었는데, 무인도 탈출 소설을 쓰려면 생각보다 과학적 지식이 많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쉽고 재미있게 읽는다고 소설을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유행을 따라 충동적으로 올린 소설은 마찬가지로 유행을 따라 충동적으로 만들어졌던 학급 카페가 자연스레 모두의 흥미를 잃고 기억의 뒤편으로 넘어가 버린 것을 따라 자연스레 함께 묻혔다. 나는 그 이후로 소설을 쓰지 않았다. 쓸데없는 완벽주의 성향은 그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모양인지, 완벽하게 이야기를 짜놓지 않으면 소설을 쓰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는데, 도통 이야깃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학원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곧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도 자연스레 잊히고 만다.      


그 후로도 만화의 2차 창작 소설을 열심히 찾아보곤 했지만, 내가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보는 소설은 그저 마이너한 장르의 2차 창작 소설이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지지 못한 비운의 코리안 헤르만 헤세들이 쓴 글인데, 2명의 독자를 강제로 쟁취한 송붕이 어쩌고 작가는 그 정도의 필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가 쓴 글이라곤 의무 참가였던 백일장에서 썼던 글, 뭐시기 글짓기 대회에 냈던 글, 학교 숙제로 냈던 보고서, 국어 교과서 활동 문제를 풀며 썼던 글 정도다. 다른 초등학생이랑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백일장에서 장려상 몇 개는 타오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콧대를 세우는 데엔 별 도움은 안 됐다.     

 


사진: Unsplash의Sergi Kabrera


그 후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게임을 좋아하던 아이여서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를 꿈꾸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어디에 시나리오를 끄적여 보거나 글을 써보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 건 다 전문학교나 학원에서 배워야만 시작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머릿속엔 항상 금발을 휘날리는 주인공이 온갖 세상의 상처는 다 짊어진 채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었지만, 그것이 밖으로 표현되는 일은 없었다.      




지금의 나는 삼십 대. 거의 20년 전에 반짝 등장했다가 금세 절필한 11세의 작가는 왜 20대였던 2013년에 이르러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 제목을 하나하나 훑어보니 놀랍게도 그걸 쓸 무렵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이었고, 당시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한다.      


일기는 공책의 세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관두기 일쑤였던 내가 소설은 꽤 꾸준히 써왔던 걸 보니, 어쩌면 나는 일기 대신 소설로 내 기록을 남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남긴 기록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엄마는 변호사나 선생님으로 키우려 했던 딸이 어쩌다 BL 야설을 쓰는 작가가 됐으려나?      



나의 다음 기록은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2013년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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