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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Jul 25. 2023

떠나고 싶어 쓰는 글

무작정 떠나는 P의 여행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만 싶은 요즘이다. 궂은 날씨와 얇은 지갑이 나의 발목을 잡아주고 있긴 하지만, 마음만은 이미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있다. 집이 아닌, 주변을 둘러보아도 온통 낯선 풍경만 펼쳐지는 곳으로. 

그러고 보면 작년 이맘쯤엔 열심히 돌아다녔던 것 같다. 친구와 차를 끌고 부산도 가고, 강원도도 갔다. 혼자 캠핑을 가기도 했다. 전부 별다른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떠났던 여행이었건만, 무척 좋은 기억만 남아있다. 종종 그때가 그립다.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땐 유독 날씨 운이 좋지 않았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무척 습했고,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웃기게도 강원도 여행과 부산 여행 모두 그래서, 우리는 이게 누구의 날씨 운이 안 좋아서 벌어진 일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계획도 없고 날씨 운도 없는 여행엔 항상 돌발상황이 뒤따른다. 잠깐 들렀다 가기로 한 곳에서 발이 묶이기도 하고, 우연히 발견한 곳에 무작정 발을 들이밀기도 한다. 평소라면 짜증 날 법한 일들이 여행지에서만큼은 색다르고 즐겁게만 느껴지는 것은 여행의 분위기에 거하게 취해버린 탓인지. 아니면 날씨에 불운을 모두 써버린 덕분에 다른 소소한 운이 따라준 덕분인지 모르겠다. 


나의 여행은 늘 이런 식이다. 계획 없이 그 자리에서 덜컥 결정해서 무작정 떠난다. 숙소와 오가는 교통편 외엔 정해진 게 거의 없는 여행. 그나마 결정된 그 두 가지도 고민하는 데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전엔 맛집이라도 열심히 찾아서 지도에 찍어놓기라도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잠들기 직전에 찾거나 가는 길에 찾거나, 혹은 여행지에서 찾는다. 엑셀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J 여행가들이 보면 답답해서 한숨을 푹푹 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지나치게 계획 없는 여행이 주는 새로운 경험을 한 번 맛보고 나면 좀처럼 그 맛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무작정 걷다가 간판이 예뻐서 들어간 술집에선 낯선 여행객을 유쾌하게 맞이해주는 주인과 친해지기도 하고, 바의 손님과 함께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느라 새벽이 훌쩍 넘어 숙소에 돌아가기도 한다. 무작정 들어간 곳에서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사기도 한다. 물론, 그 사이사이엔 힘들게 찾아간 곳이 하필 그날 휴무라거나, 주변에 갈만한 곳이 없어 한참을 걸어야 했다거나 하는 소소한 불운이 끼어들긴 하지만. 


이젠 제법 감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만족의 허용범위가 넓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무작정 들어간 곳이 성공적일 확률이 제법 높아졌다. 이만하면 현지 맛집 찾기의 달인이라고 으스대도 될 정도다. 자신감이 높아지니 새로운 곳에 대한 갈망도 커진다. 그곳에선 또 무엇을 우연히 찾아낼 수 있을까? 어떤 예기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될까? 하는 기대와 함께. 


국내에도 해외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무척 많다. 어딜 가보니 뭐가 좋다더라. 저길 가면 그게 그렇게 맛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귀에 들어온다. 또다시 몸이 근질근질하다. 무작정 핸드폰과 뭐든 다 들어있는 나의 묵직한 가방을 들고,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떠나버릴까. 이곳저곳 누비기보다 그저 낯선 곳의 낯선 방에 틀어박혀 푹 쉬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여기저기 발 가는 대로 쏘다녀보고 싶기도 하고. 그저 그때의 내가 원하는 대로 날 풀어두고 싶다. 그럼 또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새로운 즐거움을 전해줄지도 모르지. 


바깥엔 매미가 엄청나게 운다. 쪄 죽겠다 싶은데 저녁엔 또 비가 엄청나게 온단다. 예기치 못한 날씨에 밖을 나서기가 망설여져 집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매일 반복된다. 슬슬 답답한데, 정말로 어디든 떠나볼까? 이번엔 어딜 가볼까. 머릿속에 정리 안 된 지도를 즐겁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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