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견한 나의 취향
최근에 발견한 ‘좋아하는 것’이 있다. 예쁘고 편안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대체로 그건 카페나 식당이 되곤 하는데, 이따금 여행지의 숙소가 되거나 예쁜 꽃이 피어있는 길거리가 되기도 한다. 예쁜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의 취향에 맞춰 세심하게 꾸며진 공간에선 시선이 자연스럽게 어딘가로 향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한다. 예쁜 공간에서 기분이 좋아진 덕인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도 대체로 긍정적이고 행복한 것투성이다. 그중 하나를 잡아 글로 옮기는 것도 즐거움의 연장이다. 그래서 나는 예쁜 공간을 좋아한다.
공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좋아한다. 3년 정도 쓰던 핸드폰이 망가지면서 새로운 기종으로 바꾸었는데, 큰맘 먹고 가장 최신 기종으로 바꾸었더니 카메라 성능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덕분에 기대했던 것보다 사진도 더 잘 찍힌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기종이었는데. 나는 생각보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매일 먹을 것 사진을 찍어대면서도 그 사실을 이제 와 처음 깨달았다. 사진이 예쁘게 찍히니 사진을 찍는 빈도도 늘어났다. 그렇군. 나에겐 카메라 성능이 생각보다 중요한 거였어. 다음에 핸드폰을 바꿀 때 꼭 참고해야겠다.
그렇다고 비싼 카메라를 들일 마음은 없다. 나는 일상의 순간을 찍는 것을 좋아해서 매일 들고 다닐 수 있는 핸드폰 카메라가 좋고, 뭣보다 복잡한 용어를 익혀가며 전문적으로 사진과 편집 기술을 배울 마음은 들지 않는다. 어려워서 싫어! 그래서 항상 기본 카메라를 사용하고, 늘 쓰는 보정 어플로 대충 필터 하나 얹는 것으로 편집을 마무리한다. 이만해도 충분히 예쁘니 만족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하나?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좋아한다는 것 치곤 부끄럽게도 독서량이 처참하게 적다. 아직 좋아하는 작가나 출판사 같은 것을 고를 수준도 못 된다. 그러나 책을 읽고 머릿속이 이런저런 언어로 꽉 차서 복잡해지는 순간은 좋아한다. 책을 보며 자꾸 시선이 닿던 문장을 옮겨 적고, 막연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곱씹어보다가 하나하나 적어 보는 것. 그 순간이 좋다. 왠지 똑똑해진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좋아하는 책이랄 건 없지만, 좋은 책이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것이란 취향 정도는 있다. 조금 전 그런 책을 하나 만났다. 기분이 무척 좋다.
누군가와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서로의 취향을 평가하고 재단할 것 없이, 그저 난 이게 좋아요! 나도요! 전 이런 게 좋더라고요! 하고 무작정 좋아하는 것을 줄줄 늘어놓는 즐겁고 비생산적인 대화. 그렇게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취향도 점점 섬세해진다.
서로의 취향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취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최근 내가 정말 즐겁게 읽었던 책을 읽었는데, 자기 취향은 아니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책 취향을 처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난 장편보단 단편 소설을 더 좋아했고, 사건보단 감정 묘사 위주로 흐르는 이야기를 좋아하며, 사실 소설보단 에세이나 사회학책을 더 좋아한다. 게다가 책을 읽는 시점도 무척 사회학적이어서, 인문학책을 어려워한다.
제기랄. 내가 대학원에서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던 이유를 드디어 깨달았다. 인문학 대학원을 갔기 때문이었다!
맛있는 것을 여유롭게 먹는 것도 좋다. 어떤 점이 좋은지 이야기하는 것도 역시 좋다. 어느 날은 꼭 먹어보고 싶었던 케이크를 두 군데에서 사와 친구와 나눠 먹었던 적이 있는데, 가게마다 추구하는 맛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그 날 처음 깨달았다. 어느 케이크는 무척 얌전하고 기품 있는, 모네의 명화에나 나올 것 같은 요조숙녀 분위기를 풍겼고, 어느 케이크는 아주 발랄하고 화사한 맛이 났다. 그러고 보니 가게에서 만난 사장님의 분위기도 딱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다른 곳의 디저트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덜컥 다른 가게의 케이크를 예약해 버렸다. 내일 혼자 맛있게 먹을 예정이다.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좋다. 불호보단 호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 즐겁게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나까지 덩달아 신이 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싫은 것보단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말하는 사람이 되려고 의식해서 노력하고 있다. 좋아하는 걸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새삼스레 발견하는 취향들이 있다. 좋아하는 게 원래도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볼수록 좋아하는 게 더 다양해지고, 더 섬세해진다. 즐거운 경험이다. 이 글도 우연히 찾은 아주 멋진 공간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쓰고 있다. 지겹고 힘들었던 평일을 버티고 찾아온 이런 토요일의 오후가 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