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 동남아 배낭여행의 기록 (9)
65일 동남아 배낭여행의 기록65일 동남아 배낭여행의 기록
여행자라면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카오락은 태국의 남단에 위치한 휴향도시이다. 펫부리에서부터는 버스로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위치해있다. 생각보다 좌석은 넓고 버스 내부에 화장실이 있어 이동에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가방 분실이었다. 론리플래닛과 태국여행 블로거들을 통해 나이트 버스에서 줄곧 발생하는 가방 소매치기에 대해 익히 들었다.
배낭여행객들에게 가방을 잃는다는 것은 생의 전부를 잃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몸에 지닐 수 있는 가방에 꼭 필요한 필수품들을 옮겼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소매치기 방지용 속옷을 사둔 덕분에 여권과 체크카드는 팬티 안 깊숙이 숨겨두었다. 할머니 쌈짓돈 마냥 바지 안 깊숙하게- 더운 나라에서 속옷에 그런 것들을 넣고 다닌다는 건 마냥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나름의 방편을 강구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도둑맞을까 쉬이 잠들지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가방은 무사히 잘 있었다. 나쁜 일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반대로 일상처럼 지나가는 일에 대해 우리는 기록의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행자들은 그러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지레짐작 걱정과 우려로 여정을 불안과 함께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생활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문제해결능력 만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정보가 사라졌을때 경험치란 삶의 엄청난 무기가 됩니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 홀로 카오락에 내렸다. 카오락의 대해 내가 아는 유일한 정보는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도시”라는 것뿐이었다. 숙소를 찾기 위해 론리플래닛을 꺼냈다. 그러나 론리플래닛에 있는 모든 정보들이 무용지물이었다. 일 년 전 큰 쓰나미로 도시 전체가 잠겼고 모두 재건된 상태였다. 그래서 론리플래닛에서 추천하는 숙소들 모두 그 자리에 없었다.
이전과 달리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해내야 했다.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 도시답게 맥도널드가 있었다. 익숙한 곳들에서 찾을 수 있는 안정감 때문인지 고민 없이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는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하는 맥도널드에 앉아 묘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창밖의 바다를 보며 먹는 콘파이는 감동이었다.
오랜만에 누리는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원래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달 넘게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의 24시간을 타인과 공유해야 함을 의미했다. 여행은 혼자보다 둘이 좋다. 는 것은 참의 명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건강한 관계를 위함은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관계의 회복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었다. 그러나 닥치니 스스로 필요한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었다. 여행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숙소를 먼저 잡기로 결정했다. 론리플래닛 정보가 무용지물이니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다. 먼저 카오락 관광지도가 필요했다. 일상생활에는 보이지 않지만 필요로 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관광안내소가 그런 것이다.
해변을 따라 세로로 길게 구역을 이루어진 카오락에서 남쪽 Moo5 지역의 Bang Niang Market 즈음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맥도널드에서 한참을 뚝뚝을 타고 내려온 곳이다. 재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서의 선택지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아무튼 이제는 임시거처가 마련된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했듯 오롯이 내가 나답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갖추어진 것이다.
맥도널드에서부터 숙소까지의 여정은 사실 순탄치는 않았다. (1)한 여름같은 날씨 20kg이 훌쩍 넘는 배낭을 메었다. (2) 재건이 완료된 대부분의 숙소는 리조트 또는 3성급 이상 호텔이었다 = 숙소 비용이 하루 예상을 훌쩍 초과하였다. (3) 10시간 이상 나이트 버스를 타고 반수면 상태로 매우 피곤했다. 그나마 찾은 게스트 하우스의 상태도 전란 수용소 같은 병상 침대가 놓인 곳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해내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는 그대로 침대에 빨려가듯 잠들었다. 아직도 그날의 피곤함은 생생하다. 삐그덕 거리던 그 침대의 감사함 또한 말이다.
지난주 목요일 업로드를 하지 못한 글을 수요일이 되어서야 올립니다. 느리지만 지치지 않고, 꾸준히 전할게요. 유익하거나 화려한 글은 아니지만 당신의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