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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hyunsee Jan 25. 2020

기묘하게 아름답지만 알맹이 없는 관계 - 방콕

65일 동남아 배낭여행의 기록(3)


무엇이 진짜인지는 당신의 믿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2013/14년의 내가 기억하는 태국은 2000년대와 1960년대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짜뚜짝 시장이나 로컬 어귀의 식당들, 뚝뚝이나 버스는 한국의 1960년대 사진을 꺼내어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중심부의 쇼핑센터에 가면 세계적인 브랜드의 쇼룸과 여가시설이 있었다. 간호사인 러브는 성형외과에서 일하였는데 압구정과 같이 성형외과로만 북적이는 거리도 소개해주었다. 빈부격차라는 것이 너무나 실제적으로 보이는 도시였다. 어떤 것이 방콕의 진짜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모든 것 그대로 방콕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의 나는 그렇게 길거리 음식을 고집했는지 모른다. 그게 진짜 태국 같았고, 장기 배낭여행자의 주머니 사정에도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왠지 길거리에서 먹는 팟타야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서울에 사는 우리가 그렇듯 태국의 오늘을 사는 친구들도 깔끔한, 정돈된, 힙한 그런 곳을 소개해주었다. 낡고 오래된, 길거리를 음식을 선호하는 우리의 모습이 친구들에게는 이상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보여주려는 진짜의 태국은 언제나 세련된 곳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하루 예산을 초과하는 소비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결단이 필요했다. 친구들의 친절이 고맙고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지만 기대했던 태국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다음 목적지는 없었지만 태국 전국 일주라는 목표는 있었다. 복병은 파트너의 다친 발가락 때문에 우선 무리해서 걷는 일정을 할 수 없었다. 방콕에서 머무는 시간은 자연히 길어졌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그 기간 동안 우리는 계속 숙소를 옮겨 다녔다. 그 일이 얼마나 체력과 시간적으로 소모적인지 그때 알았다. 그 이후 나는 한도시를 여행할 때면 무조건 하나의 숙소에서 머무르는 편이다.



당신은 당신의 행복의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때 그에게 이별을 고했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이때가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그런데 그와 나는 헤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 했다. 사랑의 신뢰관계가 무너져도 이해관계에 의해 연인의 형태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참 씁쓸했다. 잡아야 하는 이유가 많았던 나는 그에게 참 잘했다. 내 성격은 숨기고 그의 의견의 순종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건강하지 않은 관계였다. 나는 그가 나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게 스스로를 몰았다.


그즈음 화장실 문 앞에 붙여진 문장이 보였다. “You are responsilble for your happiness” 영어 까막눈이었던 나에게도 이 문장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의 행복의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매일 불행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왜 그에게 머무르려고 했던 것일까?


그때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된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은 다 그러하다. 지금이 불행해도 관성화된 생각과 습관은 새로운 변화보다 덜 리스키 한 것이다. 그전까지 마음이 크게 동하는 연애를 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해 주는 수동적인 연애를 했다. 그때는 데이트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차 마시는 그 루틴이 싱거웠다. 그런데 마음을 준 사람과 함께하니 그 루틴을 반복해도 만나는 일 그 자체가 행복했다. 긴 연애는 아니었지만 지지고 볶고 하면서 잘 맞추어진 그 연애가 참 이상적이고 행복했었다. 그래서 오늘의 갈등을 극복하면 다시 예전의 우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선택을 할 지라도 후회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다. 선택의 타이밍을 놓치고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할 때 그 후회의 정도가 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마음이 가는 곳을 우선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그러하다.


반 정부 시위가 더욱 가열차 졌고 방콕이 슬슬 권태로워졌다. 다음 목적지인 펫부리(펫차부리)로 이동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파트너는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여행의 주도권이나 선택권은 나에게 없었기에 나 또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이끌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음 목적지로 우리는 함께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상한 관계는 계속되었다. 마치 눈 내리는 겨울을 보여주기 위해 가짜 비누거품을 내어 눈을 연출했던 테마파크처럼. 기묘하게 아름답지만 알맹이 없는 그런 관계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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