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 동남아 배낭여행의 기록(4)
자연은 위로이고 치유여라
찰랑이던 마음도 가라앉히는 도시 펫부리의 매력
아침에 눈을 뜨니 지난밤의 고생이 싹 사그라들었다. 론니플래닛에서 추천하는 숙소에는 이유가 있었다. 펫부리의 집들은 천을 중심으로 둑 위에 자리 잡아있었다. 목조 건물로 지어진 숙소는 기품 있게 아름답고, 이국적이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으니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풍류를 즐기고 산다면 딱 이런 풍경안 이리다. 뚝뚝과 오토바이 소리가 뒤엉키던 방콕 시내와 달리 펫부리 아침의 소리는 맑았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드디어 올바른 곳에 발길이 닿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스물여덟, 서울의 삶은 고달팠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 당시 나에게는 네 가지 업이 있었다. 예술강사, 레슨 선생님, 연주자, 그리고 기획자. 모든 일을 소화해 내려면 하루 24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200명을 넘었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보니 우선 150명은 거뜬히 넘었고 동아리 수업 학생들, 레슨 수강생, 기획 팀 멤버, 악단 사람들 기타 등등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삶을 살았다.
관계가 많아지니 상처 받는 일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하루는 아침을 차 안에서 먹고 있는데 울컥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공황장애 같은 것이 오기도 했다. 하루는 삼성역에서 주저앉았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나에게 휘몰아쳐 오는 것 같았다. 숨이 가빠와 구석으로 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서야 안정이 되었다. 도시생활이 체질이라고 믿었던 나는 자연으로부터 치유받고 있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삶의 대한 관찰: 로컬 마켓에서 발견한 태국 남부 지방 사람들의 삶
시장에 가면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입을 것들을 사고 판다. 시내 안쪽으로 들어가자 꽤 큰 시장이 나타났다. 내 어릴 적 골목을 뛰어다니며 가지고 놀던 공포탄을 아이들이 가지고 놀고 있었다.
펫부리는 방콕보다 더 남쪽에 위치해 날씨가 제법 더웠다. 얇은 티셔츠에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이 곳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과즙이 풍부한 과일을 양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방콕에서는 보이지 않던 감귤류의 과일이 보였다. 귤보다는 시큼하고 달았다. 천혜향이랑 비슷하지만 향은 더 진했다. 껍질이 조금 단단해서 까먹기에 좋은 과일은 아니었다. 과일 가게와 길거리 노점 곳곳에서 이 과일을 팔았다. 특히 과즙기로 즉석에서 착즙 해주는 이 주스의 맛은 아직도 입안에 침을 괴게 한다. 날씨가 더워 금세 갈증이 나는 이곳에서 주스는 더욱 달았다.
바나나 나무가 이곳저곳에 많은 태국에서 바바나 입에 구워 먹는 식문화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음식은 찰밥이다. 설탕으로 간이 된 이 스티키 라이스(Sticky Rice)는 우리 약밥이랑 맛이 많이 닮아 있었다. 떡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찰밥은 든든한 한 끼 식량이었다. 신기하게 이렇게 포장된 찰밥은 더운 날에도 쉽게 쉬지 않았다. 여행에 익숙해질 때쯤 장거리 이동을 할라치면 이 바나나 밥을 먼저 찾았다.
전 세계 어느 시장을 가도 느껴지는 생의 대한 열정이 있다. 그 나라의 진짜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더미로 있다. 억척스럽지만 풍요로운 느낌이 좋다. 사람들이 많이 사가는 것 일 수록 눈에 더 많이 띈다. 시장의 법칙이다. 그래서 그 나라를 더 알고 싶다면 꼭 로컬 마켓을 가볼 것을 추천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그런 곳보다 정말 로컬들이 소비를 위해 가는 곳 말이다.
태국 왕들의 여름 별장이라고 불리는 펫부리는 묘하게 세련되었다. 도시는 전체적으로 고요했고 정갈했다.
강을 따라 걸었다.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 바로 위에서는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이 생경한 풍경이었다. 펫부리에서의 기억은 단단하다. 사진도 많고 참말로 행복했다. 찰랑이던 그도 펫부리에 오자 점점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반대로 찰랑이던 내가 펫부리에 와서 안정을 찾아 그도 안정을 찾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