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 동남아 배낭여행의 기록 (5)
바다 보고 싶어, 바다 보러 가자
지도의 거리는 다르게 읽힌다
펫부리에서 마음이 잔잔해지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여행 오기 전부터 따뜻한 나라의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근처 우리가 갈 수 있는 바닷가 마을을 찾았다. 펫부리의 숙소 주인에게 물어 갈 수 있는 차편을 확인했다. 지도로는 가까워 보였지만 버스로 2시간 남짓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직접 숙소까지 가는 차는 없어 펜션의 주인이 데리러 오기로 했다. 펫부리를 떠나자 인터넷 연결은 더 좋지 않아 졌다. 연락을 원할 때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버스에 내려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가 지면 엄습하는 불안감을 알기에 결국 뚝뚝을 타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씩 여행의 노하우를 배워가고 있었다. 엄청난 시골이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렸다. 바닷가 동네여서 인지 해산물이 그려진 식당 간판들을 몇 개 지나쳤고 푸른 들판을 지났다. 한참 동안 모랫바람을 마신 후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래도 해가 뉘엿뉘엿 지는 그 마을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배낭여행은 이곳저곳에서 받는 감사한 마음으로
몸의 피곤을 스르르 녹이는 일
열대우림에 코티지와 펜션을 잘 가꾸어둔 곳이었다. 이곳 주인은 우리를 보자 의아해하였다. 예약 시스템의 문제였는지 그들은 우리가 내일 도착한다고 알고 있었다. 새로오는 손님이 없어 집을 비운 탓에 우리의 연락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미안하다며 작은 코티지를 예약한 우리에게 둘째 날부터는 펜션 한동을 내어 주겠다고 했다.
첫날은 이미 어둠이 나려 가지고 온 짐을 풀고 그만 쉬기로 하였다. 저녁을 먹을 기운도 근처 마땅한 식당도 없었다.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뚝뚝으로 이동할라 쳐도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다시 목적지를 찾는 동안, 길거리를 헤매는 동안 어깨에 지고 있어야 하는 배낭은 엄청난 짐이었다. 밤이 될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짐. 어깨와 배낭을 여매는 허리끈 근처의 살은 이미 빨갛게 애려있었다.
고생을 사서 하는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울컥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고생이란 걸 해본 적 없는 내게 배낭여행은 예측 불가능한 문제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혼자라면 할 수 없는 것들, 갈 수 없는 곳들을 둘이어서 해내가는 것이 신기했다. 죽을 만큼 미운데 유일한 희망이자 힘인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간단한 아침식사가 준비되어있었다. 바다를 보러 이곳까지 찾아왔어.라는 우리의 말에 주인은 선뜻 자전거를 내주었다. 낡은 자전거였지만 탈만은 할 것이라고 하였다. 걸어서 바닷가까지 가기는 무리라며. 역시 지도에서 보는 거리는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겨울이라 해수욕은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푸른 바다가 꼭 보고 싶었다.
그는 일상에서 자전거를 탔다. 자신의 집에서 일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나는 차가 있었다. 내차는 자전거를 싣을 만큼 큰 차는 아니었다. 데이트를 위해 언제나 우리는 동선을 맞추고는 해야 했다. 그가 일 끝나고 내가 그쪽으로 가게 될라치면 그는 자전거를 두고 출근을 해야 했다. 그가 나를 보러 오는 날에는 거리가 멀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을 했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는 그를 차로 따라간 적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우리관계에는 사소한 특별함이있었다. 서로를 위해 나의 일상에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해 내었다.
이렇게 함께 자전거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이후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였다. 자세가 엉거주춤하고 영 속도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씩 멈추고 돌아보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 든든했다. 조금씩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해 지자 시골길 풍경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요한 해변을 마주하자 그간의 나쁜 마음들이 다 사라졌다. 바다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한국에서 상상해온 동남아시아의 휴양지의 모습이었다. 그간 상상해온 일을 직접 경험하는 것. 드디어 만나는 여행의 참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