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미숙 Dec 14. 2021

스티커 사진

양리의 이별 보관소 세 번째 에피소드

헤어지고 생긴 기준을 없애고 픈 여자 (39)

연애기간 6년

헤어진 지 10년 된 어느 날 이별 보관소를 만나다.


10년 전 어느 카페.

둘은 평소에 짓지 않는 표정을 하고서는 마주 보고 있었다.


여자가 말했다.

"난 그래도 설레고 싶어. 우린 연인 아니고 친구고 가족이구나. 나는 아직 가족이 싫어. 난 아직도 네가 남자로 보여"


남자가 대답했다.

"이런 편안함과 익숙함도 사랑이야. 내가 너를 예전같이 안 보는 게 아니고 나는 이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편한 관계가 좋은 것뿐이야"


둘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고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했다.

연인인지 친구인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갖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대로 헤어졌다.


10년 후, 어느 날 나를 만난 그녀.

뭔가 할 말이 가득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맡기고 싶다는 물건을 건네며 말했다.


"10년 동안 가지고 있던 애물단지"


그녀가 건넨 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스티커 사진.

추억의 싸이월드 감성이 그대로 있는 스티커 사진이었다.


"둘 다 사진 찍기 싫어해서 사진이 별로 없는 데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프린팅 된 사진이라 소중하게 생각했었죠. 너무 소중해서 차마 찢어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은 찍은 행위보다는 그가 사귀면서 했던 사소한 말들 귀여운 허세가 생각나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도 같아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사진을 치웠다.


그는 그녀가 방황하던 시기에 망토 두르고 '짠'하고 나타나 6년 동안 버팀목이 돼준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를 '자신의 뇌를 그대로 스캔해 4D 프린팅 한 남자'라고 말했다. 그녀가 무엇을 하면 즐거워하는지 알고 늘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친구한테 전해 들었는데 그가 결혼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나한테 미안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사람이 결혼 준비가 안 되어있는 게 아니라 그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놨고 나는 이렇게 전해 들었다는 것에 화가 나더라고요. 아, 우리가 이렇게 대화가 많이 없었구나. 이제 그런 얘기를 하기가 어렵구나.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수순처럼 대화가 필요하다 느끼게 됐고 사소한 행동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데이트하는 날, 그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

여자는 그때 확신했다고 했다.  그리고 둘은 이별을 맞이했다.

 

여자는 처음 그의 공백을 못 견딜 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없는 자리도 버틸만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남자는 그녀의 공백 기간 동안 변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던히 애쓰고 버텼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이 둘의 관계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렇게 그 없이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다른 연애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볍게 만나던 사람도 있었고 마음을 조금 나눠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만났던 세월을 뛰어넘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다.


아마 그녀는 누군가 만나야지 만나야지 하면서도 정작 누군가를 만나면 그와 비교하며 다른 연애를 쉽게 이어가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아직도 그 사람 같은 사람 만나고 싶어요. 전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걔랑은 '우리'라는 말을 잘 썼거든요. 그냥 '우리'같이 여길 수 있는 사람을 또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걔가 기준이 된 것 같아요. "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힐끔 보더니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보는 남자의 기준이 항상 이 사람을 베이스로 두고 있는 것 같아서 탈피하고 싶어 졌어요."  


그리고 그녀는 쿨하게 뒤돌아섰다.


잘 보관해드리겠습니다.



직접 인터뷰 진행한 내용을 구성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첫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