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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y 21. 2020

사무실 꿀알바의 결말

야동을 좋아한 사장님


대학생 때 조그마한 조경회사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 원하고 원하던 '사무실 알바'였다. 꿀알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사무실 알바였다. 당시 내가 그리던 사무실 '꿀'알바 자리는 이랬다. 쾌적한 사무실에서 오는 전화받아 메모 남기고, 가끔 커피 타고, 간단한 청소를 하며,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어도 되고,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일자리였다. 내가 보기엔 나는 육체적 노동이 심한 아르바이트를 항상 하는 것 같은데, 다른 친구들은 적게 일하고 돈은 많이 받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혹은 돈은 적더라도 몸이라도 편한 일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자리의 행운이 올 거라며 찾아 헤맨 끝에 획득한 자리였다.


물론 이 꿀알바를 획득하기 전 불법 다단계 회사의 교육을 비롯해 사람 믿은 죄로 담배까지 피우는 연기를 해야 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구했다. 사무실 꿀알바.


나무를 좋아했던 나는 첫 번째 대학 진학을 조경학과로 한 적이 있었다. 제도통 둘러메고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그 전공이 꽤나 좋았다. 여러 가지 사유로 지속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알바를 구했을 때 나무 안에 둘러싸인 사무실이 너무 좋았다. 할머니에게까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었나 보다. 연세가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는 내가 졸업도 전에(고작 대학 2학년 또는 3학년 여름방학이었는데) 너무 좋은 회사에 취직한 줄로 잘못 아셨다. 친척들한테 전화해서 자랑삼아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사무실 그리고 나무.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는구나 해서 아주 들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여름방학부터 일을 하게 된 사무실 꿀알바의 회사 이름은 **조경이었다. 사실 말이 조경회사였지 설계는 하지 않는, 직원은 사장님 1명이 다인 곳이었다. 과수, 묘목, 조경수 등을 키워 판매하는 농원에 가까웠다. 사장님은 지금의 나보다 많이 젊은 청년이었는데 아버지가 하시던 농원을 물려받은 것 같았다. 아주 쪼금 날라리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감히 기억된다.


컨테이너로 된 4평 남짓한 사무실은 너무 더웠는데, 무엇보다 나무로 둘러싸여 모기가 어마 무시했다. 그래서 나의 주된 일과는 모기약 뿌리기였다. 주요 업무일 거라 생각한 전화는 하루에 5 통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 몇 통 안 되는 전화 중에는 사장님 어머니의 아들 찾는 전화도 매일 있었다. 아침 9시 출근해서 사무실 한번 닦고(농원이어서 흙먼지도 엄청났다), 모기 약치고, 느지막이 나온 사장님 말동무해주고, 또 모기약치고, 믹스커피 타 먹고, (겨우 한두장 정도 되는)영수증 정리하고, 또 모기약 치고, 점심 먹고, 사장님 엄마 전화받고, 또 모기약치고.... 정말 무료한 날의 연속이었다.


'꿀'알바 측에 속하긴 했다. 크게 힘들지도 않고 하루 놀다 가면서 돈 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시간에 대한 대가였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꿀알바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는 일 없이 가는 하루가 너무나 아까웠다. 나는 애초에 그리 생겨먹었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무료함을 잘 못 참는 성향을 타고났다.


그즈음이었다. 심심해하는 나를 눈치챘는지 사장님이 나에게 새로운 업무를 주었다. 대학생이면 컴퓨터를 잘 만지고,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든 잘 찾을 거라는 믿음에 주신 업무였다.


"야동은 어디서 봐? 다운받아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나름 답변이 가능했고, 거부도 가능했기에.


"전 야동 안 봅니다. 그래서 어디서 보는지, 어디서 다운로드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스스로 야동사이트를 찾더니 계속 날 불러 화면을 보게 했다. 물론 현란한 움직임이 있는 동영상은 아니었지만, 어떤 내용인지 알만한 특정 자세의 남녀가 있는 썸네일이 번쩍 번쩍이는 화면이었다.


"이거 어떨 거 같아? 재밌겠지?" 


이 미친!!


그 후로는 몇 날 며칠 "대학생 여친 갖고 싶다. 소개팅 시켜줘" 에 시달렸다. 그래서 결국 그만뒀다. 호응 안 해줘서 잘린 건가? 또 기억이 선명치 않다. 여하튼 내가 그리 원하던 사무실 꿀알바는 그렇게 끝났다. 나랑은 맞지 않는 걸로 결론도 냈다.


야동과 여대학생을 좋아한 사장님을 차치하고도, 해야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시간만 때우며 돈을 받는 일명 꿀알바는 나랑 맞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성과가 나고, 바삐 움직이고, 신나게 일을 하는 게 좋다.


약 두 달간은 현란한 화면과 대학생 여자 친구 타령하던 사장님에게도 많은 점을 배웠다. 내가 어디에 누구랑 있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기회였다. 그렇게 애써 포장해 보련다.


내가 기대한 사무실 꿀알바는

이렇게 아름답고 풍성한 아름드리나무에 쌓여있는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냥 허망한 희망이었다. 역시 일하는 만큼 돈도 오고, 성과도 오고, 보람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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