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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ul 14. 2024

아줌마의 주경야독: 일요일 모닝 도서관

수학도둑을 위한 오픈런


토요일엔 성당 어린이미사를 가고

주일에는 도서관을 온다. 몇 년 동안 지키고 있다.


게으름을 피우면 가까운 도서관 주차장이 금방 만석이다.

그러면 이런 땡여름에 신호등을 두 개 건너 있는 곳에 주차할 수 있다. 거길 책 열다섯 권을 넣고 이고 지고 또는 카트에 끌고 온다.


아무튼 도서관에 오면 우리 아이는 수학도둑.. 마법천자문.. 쿠키런어드벤처.. 만화책 못 봐서 서러운 고양이처럼 도서관을 헤집는다. 그리고 만족스럽게 대출을 마치고 나면 곧 울 것 같은 남자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이거... 대출했어??


아이가 대답했다.


어 대출했어. 다음 주에 반납할 거야.


들리는가 보이지 않는 총성소리가 ㅎㅎ


대출에서 승리한 자의 책상.


아무튼 나는 그녀의 옆에서 요즘 벼락치기 중이다.

집이나 독서실이나 책을 끼고 다니는 나의 생소한 모습이

아이는 왠지 싫지 않은지 옆에서 책을 읽으며 말한다.

엄마 충분히 공부한 다음에 집에 가자고.


단지 내 독서실이 월 2만 원이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줌마가 스카나 독서실 문을 열어보기엔 좀 떨리기도 하고

강의를 하도 들었더니 외이도염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어서

이어폰을 못 끼는 상태다.


오픈형 이어폰도 있는데 매우 조용한 데서는 옆사람에게 들리기도 해서 독서실은 좀 그렇고 혼자 외우려면 우리 집 방음부스, 기분전환이 필요할 땐 도서관 노트북 열람실에서 오픈형 이어폰을 끼고 강의를 듣는다. 안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다시 마시고 약이 좀 늘긴 했지만 이건 방학을 앞둔 교사의 숙명 같은 거라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아무튼 아직은 확률이 낮은 채 도전하고 있지만

확률은 올라가라고 있는 것이고

나는 매일 유의미하게 조금씩 외워나가고 있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밖에 못쓰는 날도 있지만

휴일 없이 두 시간 이상은 시간을 내고 있다.

실제 집중시간이 더 올라가야 하긴 한다.


이 나이 먹어보니 '공부'와 '필기시험'만이

나 자신을 속이지만 않으면 되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레이스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이 작은 싹들을 보며 말했다.

엄마. 얘네들이 언젠가 반드시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 게 참 신기해


언젠가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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