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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4. 2021

언제쯤 자유롭게 미술관에

쇼핑 욕구 극복 일지 : 14일 차

미술관에 오랜만에 갔다. 늘 계획 없이 갑자기 들렀었다. 일을 보러 갔다가 잠깐 짬이 나면 불쑥 가서 작품을 보고 오면 참 좋았었다. 가끔 친구들과 미술관 나들이를 계획하긴 하지만 대부분은 혼자 뜻밖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허탕을 치고 돌아왔었다. 예약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미리 알고 예약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는 걸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포기했던 기억. 그 기억이 썩 유쾌하지 않아서 한동안 미술관에 발길을 끊었었다. 언젠가 인터뷰한 인터뷰이는 전시를 보기 위해 수시로 일본까지 다녀온다고 했다. 일정 시간 작품을 보지 않으면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면서. 그는 지금도 예약을 하고 열심히 미술작품을 보러 다니고 있을까? 어쨌든 나는 코로나에 모든 걸 내어주고 조용히 칩거만 했다. 예술작품에 대한 허기는 구글 영상으로 해외 미술관 투어를 하며 달랬다. 

곧 끝날 것 같던 팬데믹이 다시 심각해지고 예약에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영영 미술관에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 길에 다 보고 와야지, 하고 호기롭게 두 군데 미술관을 예약했으나 나중에 한 곳은 취소를 했다. 들어가 보다 보니 시간도 에너지도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원래 보려고 했던 미디어아트 작품도 좋았지만 황재형 작가의 '회천' 전시가 무척 좋았다. 탄광촌에 들어가 3년 간 광부로 살며 그들의 삶을 캔버스에 옮긴 작품들은 너무 생생해서 막장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의 가치, 불평등의 풍경. 아픈 현실들이 전시장 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예술가는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들이라는 작가의 말에 감동했다.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마주했을까? 


오랜만에 진실을 마주한 관객은 빨리 팬데믹이 끝났으면 하고 전인류가 바라는 소원을 또 빌어본다. 불쑥불쑥 마음을 달래서 아무 때나 어디든 갈 수 있어야 소비를 다스리기도 더 쉬워질 테니 말이다. 어쨌든 오늘도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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