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김영사, 2023)
은유 작가의 책을 가끔 찾는다. 따뜻한 문체 때문일까, 부당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는 사람이어서일까. 김영하 작가의 책만큼 찾는 것은 아니지만 오묘한 차가 한 번씩 생각나듯 이 작가의 책에도 눈길이 간다.
글쓰기 책이 점점 늘어난다. 본격적으로 쓰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 더 정돈된 글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물욕으로 드러난다. 독서 노트에는 그때그때의 키워드나 생각만 메모하고, 이곳에 발췌문과 독자로서의 사고 과정을 글로 녹여내 보고자 한다.
글을 쓰러 오는 사람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고 상처를 한 보따리 지고 온다. p.9
글쓰기의 출발은 소박하죠. 기억 작업이고 자기 구원입니다. p.45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악을 지르고 물건을 내던지고 싶은데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끙끙대다가 글로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부담을 더는 것이다.
안 보이던 사람이 보이는 일은 일상의 작은 혁명이다. p.16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늘 보던 것을 낯설게 본다는 뜻입니다. p.37
잘 쓰려면 잘 봐야 한다고 한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잡기에는 느리고 타인에게 눈길 주는 게 부담스러워 시선을 비껴가는 나에겐 힘든 과제 중 하나다. 매년 목표 목록에 눈 마주치기, 지나가는 사람 관찰하기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성공한 적이 없다. 대신 부담이 덜한 독서를 통해 타인의 인생을 훔쳐보고 작은 깨달음을 얻을 뿐이다.
공적 글쓰기는 독자를 염두에 둔 글을 쓰라는 뜻이죠. 나를 전혀 모르는 생판 남이 읽어도 이해가 가능한 글, 불특정 다수가 무리 없이 이해하는 글이요. p.63
뜨끔했다. 내 글은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일기도 공적 글도 아닌 어딘가. 독자를 설정했기에 일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독자가 친구로 한정되어 있기에 불친절한 글이 수두룩하다. 나의 직업, 가정사, 고민을 알아주는 사람들이기에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부분이 많다. 학교 이야기를 할 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학교 내에서만 쓰이는 용어나 회사와 다른 직급의 모호함 등 독자가 바로 눈에 그리기 어려운 장면 말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친구가 말했다. 내가 하는 학교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내 눈에 비치는 게 타인의 눈에 그대로 비칠 리 없는데 배려가 부족했다.
감정이 아니라 행위 중심으로 쓰자는 이야기를 앞서 드렸죠. 글쓰기는 무언가를 구체화하는 작업이니까요. p.159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모든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을 내보이고 논증해서 독자를 설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227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겠구나. p.240
감정 가득한 혼잣말은 독자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한 번 필터를 거쳐 쏟아낸 글인데도 객관적인 묘사가 힘들다.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말에 아늑함을 느꼈다. 제발 명료해지면 안 될까?
의사이자 소설가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일이 곧 삶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주말을 싫어합니다. 주말의 공허함, 심연, 무질서가 겁나요. 월요일이 오면 병원에 가서 환자를 만나거나 타자기 앞에서 글을 쓸 수 있어서 기뻐하는 편이지요. p.265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월요일을 맞이했을 때 왜 더 힘들고 공허함을 느끼는지 이유를 찾았다. 나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함께 해야만 활력을 얻는 인간이었다. 방학 중에도 끊임없이 해야 할 일 목록을 작성하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입을 잘 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탓에 나를 드러내고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때 선택한 것이 글쓰기이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은 여느 수다쟁이 입 못지않게 바쁘다. 수단이 다를 뿐 소통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당연한 말을 하며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