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로 변명해왔던
나의 미친 완벽주의에 관하여

너무 많이 보여주는 사람과 보여주지 않는 사람 <매그놀리아>(1999)

by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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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그놀리아 Magnolia> (1999) 속 프랭크 T.J 매키(톰 크루즈)는 아픈 어머니를 놔두고 불륜을 일으키고 도망간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아간다. 성인이 되어 남성우월주의자로 활동하는 그는 여성을 성적으로 쓰러뜨리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하는 픽업아티스트이다. 가정사 그리고 본인의 결핍을 철저하게 숨기고 활동하는 그는 인터뷰 중 자신의 과거를 들추는 기자에게 분노하며 방어기제를 드러낸다.


<매그놀리아>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프랭크 T.J 매키와 같이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몇몇 캐릭터들은 결핍을 숨기고 어딘가 완벽해지고 싶어 몸부림치는 것만 같다. 이 영화는 '완벽주의 감독'으로 불리는 폴 토마스 앤더슨(일명 PTA) 감독의 작품이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못하다. 심지어 완벽 혹은 완전해지려 노력하지만, 금세 좌절당하고 만다.



vlcsnap-17221.jpg 짝사랑하는 사람이 교정기를 낀 게 멋있어 보여 교정기를 끼는 어린이 퀴즈쇼 우승자 '도니 스미스'


'백 점 만점 중 백 점 인간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수학 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다. 나는 그 정답이 '없다'임을 알면서도 풀이 과정을 찾지 못하여 정답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도움을 준 건 정신과 선생님이었다. 우울증으로 인한 진료를 꾸준히 받고 있었고 그때 선생님이 했던 말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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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백 점 만점의 백 점 사람들


"세상에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세요?"


그 말에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에릭남'이요.


나는 언제나 '에릭남'이라는 연예인이 완벽함의 대명사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호감형인 외모에 가정에서도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 같아 내게는 완벽한 사람처럼 보였다. 정신과 선생님은 조금 생각하더니 내게 되물었다.


"만약 에릭남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지 못해서 좌절했다면 어땠을까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은 언제나 말문이 막힌다. 남에 대해 속단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인데도 역시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죄책감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죄책감과 함께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에릭남은 <위대한 탄생>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내가 만약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했더라면 아마 난 완벽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세상에 숨어버렸을 것이다.




magnolia_angel.jpg 퀴즈쇼 방송 도중 오줌을 싸버린 스탠리


나는 언제나 '신비주의'가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수 있다고 단정 지었다. 사생활이나 생각을 드러내면 나의 약점이 드러날 것이고 누군가는 그걸 가지고 헐뜯을 테니까. 그래서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가만히 침묵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신비주의가 아닐 때 헐뜯는 사람이 5명 정도라면 신비주의일 때는 헐뜯는 사람이 2명 정도일 거라고.


그렇게 '신비주의'를 빙자해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 대외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떠드는 것. 나의 '신비주의'는 곧 누군가에게 완벽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다. 완벽해 보이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보면 사실 누군가에게 지탄받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무서워서 숨어버렸다 한들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그놀리아>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과 불완전한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5권 동시에 정독할 수 있는 영재 스탠리마저 화장실을 가지 못해 인간으로서 가장 숨기고픈 모습인 실례를 하는 일마저 생긴다. 영화는 스탠리에게 연민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스탠리의 실수를 탓할 수 없다. 완벽한 스탠리도 결국은 인간. 어린이이기 때문에. 스탠리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경고한다.


"아빠. 절 더 사랑해주셔야 해요."


비록 오줌을 바지에 싸버리는 일이 아닐지라도 나 또한 많은 약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은 존재할 것이지만, <매그놀리아>의 명대사는 신비주의로 변명해왔던 나의 미친 완벽주의에 대해 날카롭게 허를 찌른다.


'but it did happen.'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다.)


우연과 인연이 소용돌이치며 뻗어 나가는 이 세상. 한 번 살아가는 데에 있어 잘 살고 싶은 마음,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존재한다. 그렇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부정적인 감정은 언제나 따라오는 법이다. 최고로 행복할 때에도 큰 불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의 매커니즘이니까.


프랭크 매키는 결국 죽어가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병든 아버지를 찾아가 욕을 퍼부으며 펑펑 우는 장면을 본 나는 생각했다. 나는 신비주의이고 싶지 않다. 한 번 사는 인생 잘 살고 싶지만, 날 감추고 싶진 않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진솔한 사랑과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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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주의는 '결핍'에서 비롯되었다. 결핍이 완벽주의를 만든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결핍'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백 점 만점 인간이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설령 정말 결핍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를 여의었다. 프랭크 매키처럼 아버지를 증오하진 않았지만, 세상에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손을 잡기가 무서워서 가시는 길,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영영 돌아가시고 나서야 생각했다.


'난 대체 뭐가 두려웠던 걸까?'


폴 토마스 앤더슨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나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 영화를 만들었다. 수많은 고난이 있었다. 너무 너를 많이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 걱정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수없이 무너졌고 사고를 당한 것처럼 머리가 수없이 깨졌다. 하지만,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했던 딸이 할 수 있던 것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상관없다. 나는 그것을 해야만 했다.


앞으로 내게 <매그놀리아> 속 인물들이 겪는 끝없는 문제가 내 인생에 봉착할 것이다.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것이며 후회하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저 해버리고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인생에 귀감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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