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Dec 30. 2020

집에 대하여.


<구해줘, 홈즈> <신박한 정리> <나의 판타집> 등... '집'과 관련된 방송 콘텐츠들이 많이 보인다. 연예인 여럿이 나와서 의뢰인에게 알맞은 집을 구해주기도 하고, 엉망인 집을 치워주기도 하고, 꿈꿔왔던 집에 살아보기도 하는 식이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레 '집'으로 옮겨간 이유도 있겠지만, 더 이상 집이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 중 하나가 아닌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나는 삼십몇 년 동안 부모님과 살고 있다. 월세를 낸 적은 없지만, 기념일마다 용돈을 드리면서 부모님의 신경을 분산시켜 아직까진 들키지 않았다 휴-. 이렇다 보니 집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고, 어디에 있든 다시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늘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몸뚱이를 뉘일 집이 있다는 건 매우 쉽지 않은 일이고, 축복이라는 것을. 새삼 부모님이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립을 계획하고 있다. 집도 직장도 서울이면서 굳이 독립하려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계속 미뤄온 독립이지만 더는 안 될 것 같다.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아서 등의 이유는 아니고 그저 '내 공간'이 갖고 싶은 게 이유다. 단순히 나 혼자 머무는 공간 말고, 나의 '취향'으로 가득 채운 공간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음식들로만 채워진 여유로운 냉장고, 잘 정돈된 옷장, 커다란 블루투스 스피커로 빠방하게 틀어놓은 음악, 그리고 좋은 향기가 있는 그런 공간... (맥시멀리스트인 엄마와 투머치한 집에서 평생 살다 보니 생긴 로망이다.)

내가 독립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엄마의 반응은 의외였다. 돈은 있냐며 혀를 차거나 드디어 나가냐며 박수라도 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오히려 굉~장히 서운해하셨다. 엄마가 서운한 포인트는 "어차피 시집 가면 쭉 떨어져 살 텐데, 왜 굳이 그 시간을 앞당기냐"는 거였다. 엄마는 나랑 사는 게 좋은가. 아니 그보다 내가 시집 안 가면 어떡하려고 그런 말을...

부모님은 자식하고 사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가끔 생각했다. 가장 의아했던 건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기 방이 없다는 거다. 내 방도 있고, 동생 방도 있고, 심지어 여느 집은 옷방이란 것도 있는데 왜 부모님은 '안방'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 같은 침대를 공유하는 걸까. 배우자의 잠버릇이 고약하든 오늘따라 기분이 별로라 혼자 있고 싶든 다 상관없고, 부부라면 응당 살 부대끼며 한 침대에 누워야 하는 건가. 그런 게 결혼생활이라면 그거 별로 안 하고 싶다... 하는 식의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던 것 같다. (사실은 지금도 한다.) 적절한 각방은 부부 관계에 더 도움을 줄 것 같은데, 그런 연구 결과는 없는 걸까.

여하튼 나의 독립이, 어쩌면 엄마의 독립을 함께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시세끼 뭐 해먹 일지, 아픈 데는 없는지, 시집은 언제 갈런지... 삼십몇 년간 변함없이 자식에게 초점을 맞췄던 엄마의 삶에도 마음적인 독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엄마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면 내가 알려드리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방이 많은 집을 선물해드리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나의 독립이 가장 빠른 방법일 테니까.

(휴, 이 정도면 엄마 설득할 수 있겠지.)

나의 판타집 실현을 위해... 일단은 번다, 돈!



작가의 이전글 간장계란밥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