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도씨 Sep 23. 2023

응? 갑자기 목수를 하겠다고?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겨본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글이 다사다난했단 취업기였는데

잠깐 2년 간의 생활을 요약하자면 마지막 글을 쓴 이후 한 두 달 뒤 어느 교육 스타트업에 마케터로 합류하여 1년 4개월 가량 일을 했었다. 그리고 23년 9월 현재, 경기도 안성에서 목수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다.


"00님, 저 퇴사하려고 합니다"

올해 7월 초 폭우가 쏟아지던 날, 장기 휴가를 보내고 있던 나는 남은 휴가를 반납하고선 회사에 복귀해 퇴사 의사를 밝혔다.

'내 이럴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해왔지'

팀장님은 자신 만만하게 내가 회사에 남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해줄 온갖 설득의 카드들을 내미려했었다.

하지만 팀장님이 카드들을 하나씩 꺼내려 할때 나는 이어서 퇴사 사유를 말했다.

"저 마케터 그만 두고 목수로 전향하려고 합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팀장님은 벙찐 표정으로 "목수요?"라고 되물었다.


그제서야 팀장님은 집요한 설득을 그만두었고 나의 퇴사 예정일에 대한 물음과 어쩌다 목수로 전향을 하려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경로를 재설정합니다

운전을 할 때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놓쳐 예정된 경로를 벗어날 때, 네비게이션의 이탈 안내를 들을 때마다 '마치 내 인생같네'라는 웃픈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너도 참 파란만장하게 살구나"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할 때가 있었다.

생각하면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경로가 그다지 일반적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디자인 전공을 하고서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일하고 잠시 농산물 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마케터로, 그리고 지금은 목수를 준비하고 있으니.


누구는 부러워하기도 혹은 대책 없다며 걱정스레 보기도 한다.

나 역시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확실한 건 이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소중한 인연들도 생기고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있었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선 목적지를 바꿀 용기있는 시도가 필요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들을 좋아했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보다 손재주가 좋다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어했다. 미술시간이나 실과시간에 필통이나 연필꽂이 같은 것들을 만들면서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사물을 실제로 구현하여 완성해내었을 때의 짜릿함이 좋았다.


하지만 나의 부모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진학이나 취업과 같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 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택하기 바빴었다. 대학 진학에서도 여유롭지 않은 가정 형편을 더 고려하게 되고, 금전적으로 힘들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주변에서 말하는 안정적인 삶을 택하고자 했다. 그렇게 순수 미술에서 디자인 학부로 대학 진학을 하고, 졸업해서는 디자이너가 아닌 마케터로 취업해 직장 생활을 살아오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은 내가 금전적으로 안정적일 때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나중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었다.


그렇게 좋은 동료들도 만나게 되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감사한 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여갈수록 일의 성취를 통해 느끼는 만족감이 차츰차츰 얕아져만 갔다. 종종 마케터로서 느끼는 성취감이 마약과도 같다라는 말을 농담삼아 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형태만 다를 뿐 나의 정신에는 마약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다. 점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성과의 기준이 높아져만 가고, 성과를 내는 것에 실패하면 일의 원동력을 찾기가 어려웠다. 매출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1년 뒤의 목표는 커녕, 당장 내일의 내가 무얼 하면 좋을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일을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 날, 그간 무시하고 살았던 수년 간의 괴로움과 허무함이 나를 덮쳤다. 하루 하루 일을 하는게 너무 괴로웠다. 회사의 문제인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직 준비를 하려할 때 깨닫게 되었다.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욕망을 무시하며 사는 삶이 문제였다는 것을.


장기 휴가를 내며 그간의 삶에 대한 회고를 가졌다. '또 다시 가난에 허덕이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돈만을 쫓아 가던 것이 나를 건강하지 못하게 만들었구나.' 그동안 미래를 위해 해왔던 선택들이 사실은 이런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당장에 회피하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제는 나중이라 말하며 모호하게 살아가기보다 실패하더라도 내 욕심에 집중하고 제대로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며 또다시 찾아올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좀 더 나를 위한 용기 있는 자세로 임하고 싶었다.


그래서 왜 많은 선택지 중 목수를 택했는지,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작가의 이전글 입사 제안을 거절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