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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May 29. 2021

군대급식, 26년 전 '1주일 취사병의 기시감 2.

잡채일 수 없는 잡채 '콩나물잡채'의 추억

잠깐이야전 취사병 둘째날...


그전에 얘기할 건 그래도 훈련장의 취사병은 힘들지만 장점도 있었다는 것이다. 혹한기 훈련 나온 병사들은 낮엔 각종 훈련을 받고 밤엔 바람 다 들어오는 2인 텐트 속에 들어가서 오들오들 떨면서 거의 못자다가 아침에 일어나선 물티슈로 세수를 하고 양치질도 제대로 못하고선 바로 웃옷을 모두 벗고 달리는 일명 ‘알통구보’를 하는 것으로 훈련을 또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들어간 취사반의 텐트 속엔 난로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밥을 지어야하니 연료도 있고 불도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침엔 물을 끓여서 따뜻한 물로 세수도 했다. 단...


일어나는 시간이 새벽 3시 반쯤이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긴 했다. 아침밥을 지어야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둘째 날 아침을 어찌어찌하고 나서 점심의 유일한 단백질 메뉴가 내 담당이 됐다. 그것은 바로 ‘콩나물 잡채’.


'콩나물잡채'의 모습이다. 단 이건 '음식'이고 '군대급식 콩나물잡채'는 이런 게 아니다.


콩나물잡채라는 말을 들으면 갸우뚱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사실 나도 딱 군대 시절에만 먹어봤고 그 이후엔 본 적도 없는 음식이다. 당면 대신 콩나물이, 볶은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가 그 역할을 하고 군대급식인만큼  버섯이나 시금치 따위는 절대 들어가고 않는 ‘잡채라고 주장하는 잡채’다. 혹한기훈련 나가기 전에 점심때 자주 나온 반찬이긴 했지만 그닥 인기가 없는 음식이었다. 그도 그럴 듯이 콩비린내 나고 몸통보다는 꼬리가 더 많은 질긴 콩나물 사이에 하얗게 굳은 돼지비계 쪼가리들이 들어있는 참으로 기기묘묘한 반찬이었던 것이다. 


요리 같은 건 해 본 적 없고 콩나물잡채 조리법 따윈 더더욱 모르는 나는 그저 취사반장이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움직였다. 대형 웍 위에 기름을 두르고 자른 돼지고기들을 넣고 볶았다. 그리고 군이 허용하는 한도로만 소량 존재하는 조미료라는 것을 취사반장이 허락하는 한도에서만 뿌렸다. 불을 끄고 참기름이라고 주장하는 기름을 소량 뿌린 뒤 가장 중요한 재료인 대강 삶는 시늉만 한 콩나물을 그 윅에 넣고 마구 비벼댔다. 대강 콩나물들이 색깔이 조금 진해질 정도로 섞였는데 그때 취사반장이 말했다.


“거기 밑바닥에서 돼지고기 살코기까지 해서 한 주먹 정도 집어내봐...그리고 한 입 먹어봐!”


난 생각했다. ‘얼마나 맛없는지 스스로 먹어보란 말이지? 뭐 응당 내가 짊어질 의무지’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 ‘잡채라 주장하는 그것도 무려 내가 만든 콩나물 잡채’을 한 입 넣었다. 그런데...


맛있었다. 냄새없이 고소한 돼지살코기가 씹히는 맛 좋은 콩나물과 어우러진 입이 즐거운 음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놀라서 취사반장에게 물었다. 


“아니 맛있잖아요?”

“그래 맛있어, 원래 콩나물 잡채는 맛있는 좋은 음식이야. 근데 평상시에 네가 먹을 때쯤이면 다 식어서 콩나물은 엉키고 돼지살코기는 위에서 다 먹어서 존재하지 않고 비계만 남고, 그러니 맛이 없는 거지...” 


 다시 맛보지 못할 진정한 콩나물잡채를 맘껏 먹어보곤 싶었으나 이 정도로도 충분히 감격한 나는 조금만 먹고 정성을 다해 배식에 임했다. 내가 만든 이 맛있는 ‘진정한 잡채’를 불쌍한 어둠의 자식들에게도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뭐 역시 첫날처럼 또 미리 줘야할 사람들 주고 나니 살코기는 그닥 3백 명 병사들에게 충분히 주지 못했고 영하의 날씨에 내 비장의 콩나물 잡채는 또 ‘잡채라 주장하는 식은 콩나물볶음’이 돼서 병사들의 식판 ‘단백질’ 자리에 적당히 안착할 수 밖에 없었다.지만 군대에서 밥만들어 본 기억으로 생각해 보는 군대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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