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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May 27. 2021

군대급식, 26년 전 '1주일 취사병의 기시감 1.

잠깐이지만 군대에서 밥만들어 본 기억으로 생각해 보는 군대급식

요즘 군대 급식 사진들이 올라올 때마다 드는 건 말 그대로 기시감이었다. 이전에 군대에서 먹었던 그리고 잠깐 ‘만들어봤던’ 바로 그 급식. 


내 주변 사람들은 알지도 모르지만 나는 방위병이었다. 그런데 근무한 곳은 여느 방위들과 다르게 현역병사와 방위병이 함께 근무하는 태릉 근처에 주둔한 사단이었다. 전투병은 아니었고 운 좋게 사실은 결과적으론 운 나쁘게 사단장 비서실로 끌려가서 행정병을 했는데...


더러 좋은 배경이 있거나 아니면 대개 학력이 좋아서 뽑혀온 현역 당번병들이 사단장 등을 맡아 1대 1로 서비스를 하고 나는 그 당번병들이 못 챙기는 각종 잡무를 맡았다. 가장 중요한 건 사단장실과 회의실 등등의 청소였고 또 사단장과 부사단장 등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 준비를 했는데... 서류는 거의 안 만들고 대부분의 회의 준비는 하루에 커피 수백 잔 타기였다. 그때는 원두커피가 일반화되기 전인지라 가루커피 2,30잔을 10분 내에 타기를 하루 5,6차례 반복하기 등이 일과였다. 


그런데 이보다는 빈도가 덜하지만 또한가지 중요한 역할은 바로 비서실 대표로 ‘훈련뛰기’였다. 사단장 등 지휘관들은 자기 바로 밑의 병사들도 훈련에 예외 없이 참가하는 명분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한편으론 자기 당번병들이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을 대신 수행해서 비서실 병사들 대표격으로 사격, 대대 전투력 측정, 그리고 유격과 혹한기 훈련 등을 뛰곤했다. 물론 각 당번병 전부 대신이 아니라 그 훈련이 돌아올 때마다 그냥 비서실 병사들 대표로 한명이 나가는 경우였고 그게 모셔야할 '영감'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나였던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후방부대 기준으론 제법 자주인 한 달에 한번은 사격하고 분기에 한번은 야전에 나가서 지휘소 설치하는 등의 훈련을 했는데 뭐 이런 건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괜찮았지만 여름에 나갔던 유격 때는 PT체조하다 말 그대로 3번 졸도했다. 그리고 내게 꽤나 특이한 경험을 하사했던 게 바로 1995년 겨울에 맞이했던 혹한기 훈련이다.


  역시 내가 대표로 나가게 됐는데 훈련 첫날 아침에 회의가 있어 역시 커피타고 뭐하고 하고 나서 늦게 훈련장으로 나혼자 달려갔더니 훈련 지휘관이 난감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이유는 늦게 와서 화난 게 아니고 이미 텐트와 침낭을 다 배분해서 나한테 줄게 없다는 문제 때문이었다. 혹한기 훈련이란 건 말그대로 가장 추운 겨울 1월에 야전에서 4박 5일간 훈련하고 야외에서 텐트치고 자는 것이다. 그 텐트란 것도 2명이 한조로 쓰는 것인데 난방기구 따위는 당연히 없다. 고로 텐트나 침낭없이 훈련하라는 건 얼어죽으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고민하는 훈련지휘관은 옆에 행정병에게 소리쳤다.


“야 어디 제 들어갈 텐트가 정말 없냐?”

“남은 2인 텐트는 없는데.. 취사반 텐트에 빈자리는 있습니다.”

“그래 그럼 제는 취사반이다!”


해서 나는 졸지에 야전 취사반원이 된 것이다. 당시 훈련은 몇 주일씩 로테이션으로 하다보니 그주에 훈련인원은 한 3백 명 정도였고 그래서 그 훈련장인 산에 같이 따라나온 취사반원 한 5,6명이 중형 텐트 하나 치고 밥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취사반원들은 첨에 나를 보고는 일손이 늘어서 좋다고 하기보다는 비리비리하게 생긴 비서실 행정병이 왔으니 뭘 시켜야하나 하고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첫날 저녁에 나한테 부여한 임무 아니 음식은 가장 쉬운 ‘달걀 장조림’이었다.


  ‘달걀 장조림’ 말 그대로 달걀을 삶은 다음에 다시 간장을 넣고 졸이는 장조림이다. 첫 단계는 달걀 수백 개를 솥에 넣고 삶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고 당연해 보이는 ‘공정’인데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달걀을 한번에 넣고 삶으면 수백 개의 달걀들이 끓는 물에 움직여 서로 부딪쳐서 채 삶아지기도 전에 깨져 계란탕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기서 필요한 게 ‘다년간에 쌓인 요령’이다. 취사반 선배병사가 나를 붙잡고 가르쳤다. 일단 솥에 물을 붙고 토너에 불을 붙여 물을 끓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달걀을 ‘하나씩’ 솥에 굴려 넣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 이 굴려넣는 것이다. 즉 달걀을 솥의 가장 위에서 솥벽에 대고 옆으로 굴리는 것인데 그러면 달걀이 솥벽을 따라 나선을 그리며 돌면서 천천히 물이 든 솥바닥으로 돌며 들어가는 것이다. 달걀이 깨지지 않으면서 바닥에 천천히 떨어지는 것인데 이것을 계속 반복하면 달걀은 천천히 그리고 차곡차곡 바닥에 쌓이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먼저 들어간 달걀부터 익고 잘 쌓인 덕에 서로 부딪치는 것도 덜한 것이다. 물론 부작용은 그렇게 수백 개를 일일이 옆으로 사이드 드로우로 던져서 굴려야 하니 내 팔은 알이 단단히 배겨야했다. 

  그렇게 삶은 달걀을 껍질을 벗기고 간장을 부어서 다시 중탕하면 장조림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쌓인 수백개의 장조림 달걀. 그런데 취사병에겐 다시 중요한 두 번째 임무가 있다. 바로 균등하게 나눠주는 ‘배식’.

  장교들과 부사관들 몫으론 1인당 2개씩을 빼놓다보니 병사들 몫은 채 1개가 안 되었다. 그래서 멀쩡한 달걀들을 팍팍 쪼개서 대강 3분의 2개씩이 돌아가게 해놔야했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훈련나온 병사들 중엔 헌병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나한테 오더니 식판을 두드리며 위협했다.


“우린 더 달라 이거야! 똑같이 줘선 안 되는 거 알죠?”


‘뭐 난 임시직이라 그런게 몰라’하는데 고참 취사반원이 바로 내 국자를 빼앗더니 달걀 한 뭉텅이를 고참 헌병의 식판에 안겼다. 또 그 외에 좀 더 달라는 좀 힘있는 병사들 혹은 부사관들이 또 연이어 왔다가고...


  결국 그렇게 쌓여있던 달걀의 산은 상당히 줄어들고 그래서 나머지 대다수 병사 수백 명은 달걀 한 개가 아니라 거의 반 개씩을 그날의 유일한 ‘단백질 반찬’으로 받아서 먹어야했다. 그것으로 내 임시취사반원 첫 날이 끝났다.  


(그 다음날부턴 보다 난이도 높은 반찬과 국까지 내가 만들게 됐는데 그건 다음편에 얘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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