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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May 31. 2021

26년 전 '1주일 취사병의 기시감 3번째 이야기

돌국이 된 '똥국' , 군대급식의 추억

그리고 셋째날


드디어 가장 난이도 높은 노동의 날이 왔다. 취사반장이 이번엔 나보고 국을 끓여보라고 했다. 그것도 그 악명 높은 일명 똥국. 된장찌개였다. 


난 취사반장에게 도저히 간을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역시 반장은 말했다.


“너는 그냥 내가 넣으라는 재료만 손질해서 넣으면 돼, 간은 내가 맞춘다.”


해서 우선 무수히 많은 감자부터 껍질을 벗겼다. 그런데 산속에 수도꼭지는 없으니 대야에 물받고 감자들을 담궜다가 꺼내서 껍질을 잘랐는데 칼과 수저로 그렇게 자르다보니 앞에 몇 개는 그래도 좀 깨끗했지만 그 뒤부터는 흙이 조금씩 자른 감자에 묻었다. 좀 털어보기도 했으나 뭐 이미 손에 흙이 묻었고 씻을 물은 없으니 그냥 자를 수밖에...역시 양파도 똑같이 흙이 적당히 묻은 채로 분해돼 쌓여갔다. 물론 된장찌개에 꼭 들어가지만 군대급식엔 존재하지 않는 호박 같은 고급(?) 재료는 국에 들어가진 않았다.

그렇게 감자 등을 넣고 끓이기 시작하는데 취사반장이 텐트 한 구석에 있던 두부를 꺼내 가져와서 국에 넣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 두부는 그야말로 대자 한판 어마어마하게 컸다. 내가 두 팔을 벌려서 겨우 들었다. 그걸 들고 텐트 밖으로 나와서 국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오른쪽의 국이 바로 '똥국'이다. 내 끓였던 국은 이보다는 더 많은 두부가 들어갔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팔에서 힘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한번 내려놓고 다시 들까하는 생각도 했으나 도저히 내려놨다가는 다시 들 가능성이 전무했다. 당시 나는 국방부 한계 체중을 간신히 넘는 정도의 약골이었고 내 체감상 그 두부의 무게는 거의 내 몸무게에 가깝지 않았나하는 과장된 생각을 한다. 어차피 26년 전 기억 아닌가? 그러나 적어도 비실비실했던 내 팔의 힘 정도는 앗아 가기에 더없이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무게였다.


결국 국솥 몇 발자국 앞, 평평했던 흙밭 위로 그 대형 판두부는 거꾸로 엎어져 떨어졌다. 그순간 나의 마음도 엎어졌다. 아 판두부, 3백 명 병사들의 식판 가장 넓은 국자리에 들어갔어야 할 두부여, 똥국의 유일한 완전무결한 순수한 재료여...그것이 비실비실한 임시 취사병의 팔위에서 흙바닥으로 착지한 것이었다.


그 하얀 직경 1.5미터는 될 판 두부는 이젠 하얗지 않게 흙덤벅이 된 채 그나마 부서져 땅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입만 벌이고 ‘아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취사반장이 그순간 들었다. 삽자루를...


땅바닥 고르는데 썼던 대형 삽자루. 그 삽을 높이 처든 것이었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 저걸로 맞는구나, 저 큰 삽으로 맞는구나, 아 부모님, 친구들이여 나는 다른 것도 아니고 두부를 엎어서 여러분과 이제 못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두부를 엎어서...’


이렇게 생각하고 체념하는데 취사반장은 망설임없이 삽을 내 머리가 아닌 땅바닥의 두부쪽으로 내리더니 두부들을 삽으로 퍼서 그대로 국솥에 투하했다. 흙이 듬뿍듬뿍 묻은 그채로 말이었다. 


“아니 반장님 두부를, 두부를, 아니 흙을 넣으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자 취사반장은 화도 안 난 평온한 얼굴로 놀랍게도 차근차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흙은 물보다 무거워, 가라앉겠지. 그리고 국솥은 충분히 크지, 결국 흙은 밑바닥에 가라앉는데 우린 그 밑바닥까지 퍼서 애들에게 주진 않아. 그전에 국배식은 끝나거든...”


결국 나는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하면서 병사들에게 국을 퍼줬다. 건더기도 줘야하니 국자를 휘젓기는 했지만 휘젓기를 세게 하진 못했고, 그렇게 3백 명분의 국배식을 마치고는 국을 퍼 먹는 불쌍한 3백 명들을 근심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혹시나 와작 소리를 내면서 입을 부여잡는 중사, 하사들, 헌병대들, 본부중대 현역, 방위병들 등등이 나올까봐, 그렇게 되면 그순간 그들은 "이 돌국 끓인 새끼 누구야?" 하면서 나를 잡아서 훈련장 한 구석에서 매달아버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아무도 이상한(?) 행동없이 국을 삼키며 식사를 마치는 것 아닌가? 단 한 명도 흙을 씹었다고 말하는 병사는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사병식당에서 먹던 국보다는 야전에서 만든 국이 훨씬 맛있다는 말까지 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물보다 비중이 큰 돌은 가라앉는다는 놀랍도 당연한 물리학의 법칙과 고참 취사반장의 경험의 힘에 나는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임시 취사병의 일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혹한기 훈련의 마무리인 45킬로미터 행군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는 것으로 4박 5일간의 야전 취사반 생활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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