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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eam Apr 07. 2024

딱새의 봄노래


배가 노란 딱새는 올해도 그 유명한 딱새의 봄노래를     

햇살 따스한 봄 향기 속으로 풀어놓았습니다.     

하얀 아카시아 꽃송이도 하늘하늘 봄바람에 흔들리며     

황홀한 노랫소리에 취해 잠이 들락 말락 합니다.     

" 그녀가 올해도 내 노래를 받아줄까?"     

간절한 마음으로 절절히 쏟아내는 수컷 딱새의 노래는     

새초롬한 그녀를 또다시 사랑에 빠지게 했네요.     

     

두 마리의 딱새는 어느새 한 가정을 이루어 집을 짓습니다.     

귀여운 아기 새를 키울 보금자리는 마른풀 가지를 엮어서 지어요.     

서로 번갈아 가며 부지런히 풀 가지를 물어 날라요.      

이제 곧 알을 낳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고양이 밥 주는 자리 위쪽 선반에 집을 지어 버렸네요.     

딱새 부부는 고양이가 뛰어오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     

아침저녁으로 다람이와 봄이가 밥 주기를 기다리며 엎드려 있는      

뒤꼍은 위험해요. 심지어      

날래고 힘 좋은 도둑고양이들까지     

남은 밥을 노리며 서성대는 곳이니까요.   

  

마른풀 가지들이 흐트러져 있는 선반에 작은 풀 바구니가 생겼어요.     

궁금해서 살며시 손가락을 넣어 봅니다.     

오목하니 아늑한 느낌이 드는 풀 더미 안에 동글동글 자그마한 알들이 느껴져요.     

얼른 손을 뗍니다. 혹시 사람 냄새 때문에 어미가 알을 버릴까 걱정이 되어서요.     

딱새 부부는 무사히 새끼들을 키워낼 수 있을까요?   

       

어미 새는 둥지 안에 있는 둥 없는 둥 꼼짝도 않고     

알을 품고 있어요.      

날마다 고양이가 야옹거려도      

어미 새는 잠깐씩 자리를 비우기는 하지만     

어느새 돌아와 있네요.      

어미 새는 불안하지 않을까요?     

나는 아침저녁마다 고양이들 밥을 주러 뒤꼍에 나갑니다.     

아빠 새도 근처에서 삐삐 소리를 내며 곁을 떠나지 않아요.   

  

그러던 어느 날,     

갓 알을 깨고 나온 듯 빠알간 아기 새들이 목을 쭉 빼고 부리를 쫙쫙 벌립니다.     

세상을 전부 빨아들일 듯 부리를 쭉 내밉니다.     

어느 때는 어미가 어느 때는 아빠가 벌레 한 마리 입에 물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기다립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살짝 자리를 비워주니 잽싸게 둥지로 날아듭니다.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아기 새의 쭉 내민 입 속에 먹이를 넣어주었겠지요.     

발가벗었던 아기 새들은 날마다 조금씩 보송보송해집니다.          

한 번은 삐삐 거리는 아빠 새의 소리가 왠지 평소보다 다급해 보이고,     

뒤꼍 선반 쪽에 묵직한 소리가 나는 듯하여 얼른 뛰어가 보았더니     

커다란 도둑고양이가 떡하니 선반에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깜짝 놀라 뛰어가며 쫓아냅니다.     

둥지를 들여다보니 

휴우, 아기 새들은 무사하네요.  

   

며칠 뒤에 또 고양이 밥을 주러 가는데 어떤 시선이 느껴지더라고요.     

고개 들고 보니 제법 깃털이 무성해진 아기 새 한 마리가     

떡두꺼비 같은 부리를 꾹 다물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봐요.     

4.04kg 우량아로 태어난 우리 딸처럼 너무 귀여워     

얼른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푸르르     

아기 새가 날아 내리는 게 아니겠어요.     

안 돼!     

지금 다람이도 봄이도, 강아지 토토도 근처에 밥 먹으러 와 있는데.......     

모두 일제히 아기 새 쪽으로 달려갑니다. 날랜 봄이가 제일 가까이 다가가네요.     

" 안 돼 안 돼, 저리 가!"     

외치며 따라갑니다. 봄이가 멈칫, 다람이랑 토토도 멈추었어요.     

얼른 달려가 아기 새를 손에 쏙 잡으려는데, 얘가 생각보다 빠르네요.     

얼른 또 포르르 날아가 버려요. 아기라도 날아버리니 어쩔 수가 없네요.     

또 따라가요. 몇 번을 놓치고는 마루 아래로 내려갔을 때, 겨우 두 손으로 감싸 잡았어요.     

조심조심 둥지로 다시 넣어주니     

떡뚜꺼비 같은 부리를 하고 또 나를 바라보아요.     

다른 아기 새들은 아직 푹 자는 듯 꼼짝 않네요.     

아아, 얼른 자라 무사히 저 하늘로, 저 높은 나뭇가지 위로 날아오르길!    

      

오후에 고양이 밥 주러 뒤꼍으로 다시 갔는데, 왠지 딱새 둥지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올려다보았더니, 

둥지가 텅 비었지 뭐예요.     

이렇게 갑자기?      

아기 새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지켜볼걸.     

모두 날아가는 그 순간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어미 새랑 아빠 새가 곁에서 인도했을까?     


아기 새들도 떠나고 엄마 아빠 새도 다시 찾아오지 않는 남겨진 둥지는     

볼 때마다 허전하네요, 작은 블랙홀이 생긴 듯.     

노란 딱새의 노래는 올해도 아기 새들의 새로운 출발로 한 단락 마무리 되었어요.     

내일은 흐트러진 둥지를 정리해야겠어요.     

내년 봄엔 좀 더 안전한 자리에 둥지를 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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