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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3.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2


(출국일 D-29)



취업하는 과정은 연애와 유사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서류전형에서 눈길조차 한 번 못 받고 선풍기 바람에 부질없이 날아가기도 한다. 반대로 관심 없던 이에게 지나가며 던진 한 마디가 결혼이라는 결론을 가져오는 일도 있다. 둘 다 모두 운과 인연이라는 요소가 작동하는 공간.  



나의 pd도전기를 연애에 비유하자면,

나는 좀 억울하고도 뒤틀린 막장 짝사랑을 했다.   



(아래에서 짝사랑하는 이는 방송사 pd, 마음에 없는 남편은 회사를 지칭한다.)


원래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는 나를 알지도 못했다. 주위 눈치를 살피는 나는 가정 형편에 도움이 될 거란 명목으로 마음에 없는 이와 결혼을 했다. 등 떠민 사람도 없는데. 그리고는 남편이 출근을 하면 호시탐탐 어떻게 하면 짝사랑남을 만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궁리한다. 다시 남편이 퇴근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목욕물 받아주고 저녁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매주 공부하고 작문 했던 노트들. 일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쓴 글, 내 새끼들이니.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부단했던 노력이 작은 빛을 보았다. 짝사랑하는 이가 나의 존재를 눈치챘다. 조금씩 대화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썸이 시작되는 듯했다. 나에 대한 그의 관심에 더욱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았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이 고비만 넘기면 될 것 같은데. 1년 넘게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 그에게 다가갔다. 남편에게 들켜 일을 거스르지 않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짝사랑남에게는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매일을 노력했다.


같이 공부했던 이들은 서로의 글을 첨삭해주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불렀다. 이제 때가 되었다. 설레었다. ‘고백할 때인가?’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 목전에 왔다.



그런데 나를 반기지 않는 .

실망한 듯한 표정, 경멸하는 듯한 눈빛.

그리고 이어지는 통보.


“뭐야, 너 유부녀였어? 그래 놓고 나하고 썸 탔던 거야?”

"...."



이 눈빛을 나는 모 방송사 최종면접에서 느꼈다.

“보니까 회사도 큰 데 다니시고, 연차도 좀 되신 것 같은데. 인제 하는 일 재미없고 새로운 일에 호기심 느끼고 싶으신가 본데. 왜 지원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질문도 아니었다. 압박 면접용 질문이었으면 대꾸라도 할 텐데. 그저 나의 이력을 보고 하는 평가. 아래 자기소개서에 그토록 구구절절이 왜 하고 싶은지 적혀있는데....


‘아니야,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너만 좋아했어. 결혼은 이유가 있었다구.’ 피를 토하며 말해도 소용이 없다. 나는 괜찮은 남편을 두고는 자신과 바람을 피우려고 했던 여자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방송사의 최종면접 불합격이 발표된 이틀 뒤, 회사의 진급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당시 회사는 같은 동기 전체의 55%에 해당하는 인원에 대리 진급을 시켜주었다. 나는 진급 시험에 패스하였고 주위 동료들이 축하해주었다.


그 날 나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 우는 모습이 보일까봐 30분마다 화장실을 찾아 울었다. 울고 싶지 않지만 눈물은 나의 의지로 멈추지 않았다. 종일 울어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유를 이어가자면 이런 기분이었다.



짝사랑남에게 차인 지 이틀 째. 넋 놓은 내게 사랑하지 않는 남편이 모임을 갔다 와서 말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 나갔는데 다들 자기 애 사진 자랑하는데 나만 없어. 우리도 아이 갖자.” 그리고는 생각 없는 나에게 달려다. 오만 방법을 다 동원해서 피임했는데, 시댁에 댈 수 있는 핑계도 이젠 없는데.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나는 이제 이 세계를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대리 진급을 알리는 회사 메일은 그런 의미였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아이를 가졌음을 보여주는 임신테스트기 두 줄 같은 것.  


산다면 살 수 있지만,
다시 눈 뜬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살아도 상관은 없는데,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보내는 나는
이 세계의 비효율 아닌가?   




최종면접 결과를 받아 들었던 그 주 금요일. 퇴근이 늦었다. 당시 회사는 파주에 있어서 평일에는 기숙사에 지내다, 금요일 저녁에 집이 있는 서울로 가는 퇴근버스를 탔다. 이 버스를 놓치면 문산역에서 경의선을 타야 했다. 문산역은 문산 읍내에 있고, 주변에 논밭이 많은 문산읍에는 가축병원도 있었다. 이 날 버스를 놓쳤다.


문산역을 가다 발견한 가축병원 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농약이 내 머릿속을 떠 다녔다.

어차피 살아도 내일은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갈까........


멍하니 서 있은 지 2시간이 지났는데 그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언제 오냐’는 가족의 메시지를 받고 발길을 떼었다. 엄마와 동생이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이 곳에서는 농약을 사서는 안 되었다. 차마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그 날 이후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 퇴근하고 공부하는 일상을 보낸 지 2년이 지났다. 애쓰는 일상은 악몽과 가위눌리는 밤을 내게 주었다. 원래 무척 잘 잤는데도.


그리고 전날 나는 kbs 서류전형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큰 들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짝사랑남을 보내주었다.
이제 내 인생에 pd라는
짝사랑은 지난 일일 뿐이다.
완전한 이별을 했다.  




파리 행 티켓을 끊던 그 날,

몇 년 만에 꿈을 꾸지 않고 잤다.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저는 최근에 프랑스를 다시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는데요. 1편에 이야기했던 대로 인천-파리 에어프랑스 직항 편을 89만 원 대에 예약했지만, 코로나 19로 눈물을 머금고 환불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외에도 기존에 예매한 항공권을 취소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항공사 별로 취소 조건이 차이가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똑같이 코로나 19로 인해 취소 환불을 하더라도, 시기에 따라서 항공사 측에서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 다르더군요.

EU 대다수 국가가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기 이전에 코로나 19로 인한 감염 여부가 우려되어 취소하신 분들은 수수료를 많이 물으신 것 같았습니다. 특히 국적기의 경우는 출발일 기준으로 취소 시기에 따라서 수수료를 달리하기 때문에 입국 금지가 불확실했을 때는 고민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았어요. 저도 고민이 되었는데 제가 예약했던 에어프랑스를 비롯해 외항사들은 시기에 따른 취소 수수료 기준들이 없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냥 출국 체크인 이전에 환불(변경)하는지 아닌지만 구분합니다. 제가 믿기지 않아서 에어프랑스 고객센터에 직접 문의했고 공지된 사항 그대로라는 답을 받았네요.

프랑스 행정부의 입국 금지 조치가 3월 말에 걸렸고 저는 이에 따라 에어프랑스로부터 전액 환불을 받았습니다. 입국 금지 조치가 걸리기 이전, 코로나 19 감염 확산 초창기에 환불받으신 분들은 수수료를 물으셨다는 커뮤니티 글들이 종종 보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동에 대한 가치관이 아예 바뀐 상황이라 항공사들이 취소 환불 규정을 어떻게 새롭게 규정할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예전과 같은 규정으로 되돌아갈 지도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취소 환불 규정은 국적기와 외항사 간에 차이가 있었다는 건 알아두면 좋은 것 같습니다.  
국적기인 대한항공의 취소 환불 규정입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이전 규정입니다)
외항사인 에어프랑스의 취소 환불 규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 감염 확산 이전 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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