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까비 Aug 04.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한 프랑스 여행기 4


(출국일 D-7)



갑자기 주위 동료들이 모여들어 물었다.

“너 프랑스 어디 간다고 하지 않았냐? 괜찮겠어?”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 시내 곳곳에서 총격과 비명이 들렸다. 사망자가 130여 명, 부상자가 300명을 넘어간 테러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가 파리 시내 전체를 상대로 일으킨 것이었다. 특히 파리 제11구에 위치한 바타클랑 극장에서는 록 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IS가 탈출하려는 관객들이 나가는 극장 출구를 막고 테러를 일으켜 사실상 대학살이 일어났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올랑드는 국가비상상태를 선포했다. 테러범 일부는 폭탄을 터뜨려 자살했고, 프랑스 경찰 특수부대가 도피한 테러범을 사살하기도 하였다.


.....

사람이 안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도 안 되는가 보다. 5년 간 붙잡고 늘어졌던 꿈을 내려놓고 이제 미련도 버리러 가려했는데, 가려 대학살이 일어났다. 수많은 이름 모를 시민들이 사망하였고 안타까움에 세계가 비탄에 잠겼다.


나는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인가 인생의 커다란 것을 하나 포기하고 나니 행지의 안전에는 큰 마음의 동요가 없었달까. 회사의 지인들은 “목숨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냐”며 걱정 섞인 말들을 한 마디씩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러게요..."하고 뜨듯 미지근한 답을 하고는 속으로 '이곳이나 저곳이나 제게 의미 없기 매 한 가지 아니겠어요.' 답했다. 


'가서 죽을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한 건 맞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져 버린 세상, 오늘도 의미가 없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것이 없다면 굳이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아 젠장, 죽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미치도록 살고 싶다’는 반어적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살아도 상관없고 죽어도 상관없어요.’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정말로 어느 날
세상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계획했던 이들의 당황한 글들이 넘쳐났다. 눈물을 머금고 항공권과 호텔을 취소했다는 사람들부터,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물고 여행 일자를 미뤄보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지를 급히 변경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프랑스라는 로망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아래에는 테러로 사람들이 사살된 곳에 가서, 신혼여행이라고 셀카 찍고 즐겁게 돌아다니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는 댓글도 일부 달렸다.



 어려웠던 건 가족이었다.

“상황이 저렇다는데 가도 되겠니?”라고 엄마가 걱정을 했고, 동생은 옆에서 말은 못 하고 고개 끄덕거렸다. 나는 대놓고 상관없다고 정색하지 못했다. 걱정하는 듯 아닌 듯 애매한 표정만 지었다.



테러가 난 장소에 아무렇지 않게
죽어도 상관없다며 여행 간다는 딸의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줄 자신은 없었다.



우물쭈물 우유부단하게 있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프랑스는 국경 봉쇄를 해제했고, 항공사들은 특별한 대처 없이 항공 운항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매일 들어갔던 아시아나 홈페이지에는 별다른 공지가 뜨지 않았다.




(파리에서 르 몽드 지 기자가 기록한 당시 테러의 참혹한 모습-영상)

http://blog.naver.com/oes21c/220541442862

** 당시 영상이 포스팅된 다른 분의 네이버 블로그로 연결하여 참조합니다.





#꿈 #포기 #프랑스 #파리 여행 #바타클랑 #IS #테러 #프랑스 정부 #프랑스 여행


작가의 이전글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