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사흘 씩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낡은 호텔의 낯선 방으로 가는 여자가 있습니다. 이 여자에게는 멋진 집과 가정이 있습니다. 여자가 집을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읽고 나면 ‘그녀가 왜 그랬을까’ 하고 자꾸 묻게 되는 소설입니다. 우선 견고한 가정의 울타리를 뚫고 침범한 적에 대한 은유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1985년 어느 날, 저희 아버지와 함께 논에서 일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허리를 한번 펴신 후 고개를 들어, 집게손가락으로 한 곳을 지목하시며 ‘우리 저기에 집을 지읍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후 여러 단계를 거쳐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오랜 집을 떠나 새 집을 짓게 됩니다. 80년 후반 지방 소읍에 트럭 이사가 있을 리 없어 온 마을 분들이 경운기에 이삿짐을 싣고 여러 번에 걸쳐 짐을 옮겼어요. 저희 집안이 옛 동네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새 집의 역사를 새로 쓴 날이었죠. 이사 후 휑한 마당을 채우기 위해 옛 동네 방죽에서 잔디를 캐 와서 마당에 깔고, 울타리에는 키 작은 관목을 삥 둘러 심었습니다. 앞으로 논이 펼쳐진 곳에 세워진 붉은 벽돌집은 5월이면 잔디와 나무들로 녹음이 우거졌습니다. 세월이 거듭될수록 잎이 몇 없던 울타리 나무는 점점 무성해졌고, 다양한 과수나무들은 차례로 넓은 마당에 채워졌고, 들의 거친 잔디는 집 마당 흙에 순응하여 곱게 번져갔습니다.
25년 후 이 붉은 벽돌집에 보이지 않는 적이 출몰합니다. 이 적은 거침없이 안방까지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낮잠에서 일어나신 아버지께서 그 적과 눈이 마주쳤고, 70년 넘게 단련하신 단단한 근육의 힘으로 안방 미닫이문을 번개처럼 닫아 적을 몰아냈습니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여유도 잠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온 어머니는 현관에 똬리를 튼 또 다른 적을 발견합니다. 어머니의 순발력과 담력은 아버지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아버지보다 훨씬 더 빠르며 담대했습니다.
그렇게 몰래 집에 들어온 적을 무찌른 부모님은 그 적들이 감히 어떻게 집을 침범하여 당신들을 불안에 떨게 했는지 철저한 조사에 돌입했습니다. 25년을 넘게 초록이 무성한 마당은 인간인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체가 공생하는 공간으로 진화했답니다. 그중 뱀들이 겨울잠을 잘 시기가 되었고, 보금자리를 찾는 중에 따뜻한 기운이 나오는 구멍을 발견하면서 예상치 않게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오자 잠에서 깨어난 적들은 봄 들판으로 나가려 했으나 그만 출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집의 안쪽으로 나 있는 다른 구멍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와 버린 거죠. 80년대 지방 소읍 건축 공법에 맞도록 지어진 집에는 외벽과 내벽 사이에 공간이 있었고, 몇 해 전 에어컨 설치를 위해 구멍을 뚫으면서 외부와의 연결 통로가 만들어지고, 그 틈으로 적들이 침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모님은 온 집을 샅샅이 뒤져 틈을 메꾸며 다시는 적들이 집을 넘볼 수 없도록 단단히 마무리하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 고향집에서 잠을 자는 날에는 행여 남아 있는 그 적들이 있을 까 봐 사시나무처럼 온몸의 감각을 깨워 방 안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주인공 수전 롤링스가 집의 정원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적의 존재를 느끼고, 긴장하며, 공황상태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전개되는 단편소설입니다. 1960년대 런던의 여성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나도 이런 적 있는데 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꽤 많이 나와요.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경험은 했지만, 표현하기는 어려운 부분을 작가가 매끄럽고 재미있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공감이 가능한 이유도 있죠. 이 소설을 읽으면 82년생 김지영을 만나는 것도 같지만, 사실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이면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정말 내 일처럼 공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공감은 가지만 결론에는 결정적인 한 부분이 나오기 때문에 매력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