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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폴 Aug 11. 2020

도리스 레싱의 삶, 그 속의 틈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2)

도리스 레싱의 삶, 그 속의 틈

 

90세의 나이에도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던 작가 도리스 레싱은 ‘찢기고 상처 받고, 실패하더라도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재창조해간다’고 말했어요. 그녀의 소설은 평범한 일상을 그리지만 질문을 하게끔 하는 소설을 썼어요. 19호실은 어떻게 보면 실제 존재할 것 같은 중산층 가정의 아내가 나옵니다. 하지만, 작가도 독자도 수전 자신도 결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합니다. 



완벽한 집, 완벽한 아이들, 완벽한 가정 속에서 바쁘게 지내던 수전 롤링스는 어느 날 문득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집을 나옵니다. 왜 일까 궁금해서 끝까지 읽어도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아요. 추측할 뿐이죠.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보여주기만 합니다. 작가 자신도 수전이 왜 그랬는지 자세히 이해하진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소설의 주인공 수전 롤링스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합리적인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의 내면 어딘 가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에 완벽한 집 안에서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모든 것에서 완벽하고 싶으나 완벽에 금이 가고, 피로를 느낀 나머지 혼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든 거죠.



작가 도리스 레싱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편적인 주제를 담았습니다. 레싱이 작품에서 다루는 대표적인 주제는 이념 갈등, 성 차별, 인종 차별입니다. 이 주제들은 모두 그녀 삶에서 나온 것이죠. 그녀는 글쓰기 형식을 선택할 때도 실험적이었습니다.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거죠. 소설, 에세이, 메모, 공상 과학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그녀의 주제를 담아냅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레싱이 88세였던 2007년 그녀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좌절과 혼돈 속에서도 인간성의 희망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했습니다. 뒤늦게 받은 상이라 그런지 그녀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는 글에서도 그녀가 자란 짐바브웨의 책이 없어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에 대해 씁니다. 그 순간에도 인간의 불평등한 상황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레싱의 소설은 자전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작가의 성장 배경과 소설 집필 전까지의 삶은 다채롭습니다. 어머니와의 갈등, 이란 출생 후 짐바브웨에서의 생활, 13세에 자퇴 후 독학, 공산당 가입 이력은 소설 창작에 영향을 주었죠. 그녀 삶의 경험과 그 속에 생겨 난 균열이 소설의 소재가 된 것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삶에 균열이 생깁니다. 레싱의 경우 출생 시 첫 번째 균열이 생깁니다. 



1919년 영국령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 태어났는데 아들을 기대한 부모는 딸의 이름을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의사가 즉흥적으로 도리스라는 이름을 제안했죠. 작가의 어머니는 1차 대전 당시 간호사였고, 아버지는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영국군 대위였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하도 전쟁 당시 참혹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서 어린 레싱은 삶은 어둡게 운명 지워져 있는 거구나 느끼곤 했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어요. 간호사라는 직업상 정확성이 우선이었던 엄마는 아기 도리스가 배가 고파 울어도 정확한 간격으로 우유를 먹였고, 아기는 계속 배가 고파 울었습니다. 엄마는 아기가 예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훗날 엄마와의 문제로 인해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고, 그 경험도 글의 소재가 됩니다.



레싱 소설 속에는 아프리카에서 한 경험이 반영되어 있어요. 1924년 레싱의 가족은 자동차로 달린다면 꼬박 6일이 걸리는 먼 아프리카 대륙의 남부 로디지아 (현 짐바브웨) 옥수수 농장으로 이주합니다. 아버지가 아프리카에서 옥수수 농장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꼬임에 빠져 넓은 농장 토지를 구입하고 이사를 간 겁니다. 엄마의 여행 가방에 담긴 실크 드레스는 진흙투성이인 이곳에서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죠. 그래도 더 필사적으로 문명화된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면 아버지는 기대했던 옥수수 농장에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자 힘들어했어요. 



레싱은 자신의 어린 시절은 기쁨과 고통이 울퉁불퉁 뒤엉켜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초원이 위로가 되긴 했지만, 딸을 잘 키우려는 엄마는 강박이 심했고, 그럴수록 어린 도리스는 벗어나려고 애를 썼습니다. 늘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꿈꾸었다고 합니다. 작가가 되려는 구체적인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불행한 어린 시절이 창조적인 작가를 만들어 낸 것은 사실입니다. 불행했던 어린 도리스는 영국에서 배달되어 온 디킨스, 로렌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레싱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추려 하지 않고, 도전하려고 했습니다. 옥수수 농장에서 성장하면서, 흑인 노예들이 받는 차별과 억압을 직접 확인했고, 가까이에서 흑인을 지켜본 경험은 첫 번째 소설인 풀잎은 노래한다의 소재가 되었죠. 13세에 가톨릭 여자 학교를 자퇴하고, 15세에 독립한 후 베이비시터, 전화교환원, 타이피스트로 일하며 소설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삶의 또 다른 균열이 더 벌어진 건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이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으로 레싱은 여성의 삶과 성차별에 관심을 갖고 소설에 담아낸 듯합니다.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통해 결혼 제도 속의 여성의 삶에 대해 깊은 통찰을 얻었을 겁니다. 레싱은 19세에 공무원과 결혼하지만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숨 막히는 권태감을 느끼고 이혼합니다. 이때의 경험을 ‘지루함의 히말라야산을 오르는’ 것과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후 공산주의 독서 클럽에 가입하여 두 번째 남편을 만나 한번 더 결혼하지만 이혼합니다.  



1949년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아들 피터와 런던으로 돌아오고 첫 번째 소설을 발표합니다. 런던으로 돌아온 레싱은 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집을 수십 번 옮겨 다니며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주목을 받습니다.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고,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기도 했고, 핵전쟁에 대해 반대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1962년 대표작 황금 노트북은 페미니즘 소설로 평가를 받았지만, 자신은 그렇게 불리길 원하지 않으며,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작품으로 평가되길 원했습니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3 편


https://brunch.co.kr/@goghea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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