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 앞 복도에 종소리가 울린다. 4교시가 끝났다. 이제 곧 아이들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예전에는 종소리가 울리면 다섯을 세기도 전에 복도 끝에서 깔깔대며 달려오던 아이들의 발소리가 있었다. 지금은 점심시간이 시작되어도 복도가 적막하다. 좌우를 둘러봐도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일 분 넘게 기다리자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내려와 복도 바닥에 표시된 2미터 선에 맞추어 줄은 선다. 2미터는 나의 안전을 확보하는 거리이자 타인과의 나눔을 최소화하는 거리이다.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멀다. 급식실에 들어서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사방 2미터의 보호구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급식실 출입구에 선 교사가 맛있게 먹으라고 연신 말하며 아이들의 체온을 재고 손에 세정제를 뿌려준다. 급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은 아이들은 빨간색 딱지가 붙은 좌석에 한 명씩 떨어져 앉는다. 마주 보는 친구도 없고 옆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급우도 없다. 마스크를 벗고 고개를 숙인 채 자기 식판만 바라보며 밥을 먹는다. 같이 먹자고 권유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오늘 급식 맛을 평가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후의 일정을 위해 지금의 허기를 달랠 뿐이다.
뒤쪽 테이블에 앉은 남자 아이들이 밥을 먹다 말고 킥킥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리 지도를 하던 교사가 아이들에게 다가가 마스크 위로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말하지 말라고 말없이 표현한다. 아이들은 민망해하며 자신의 급식판에 집중한다. 급식실은 다시 조용해진다.
급식실의 아이들은 더이상 신나서 밥을 먹지 않는다. 말도 최소한만 한다. 학교에서 가장 시끄러운 장소였던 급식실은 말을 하면 민폐를 끼치는 곳이 되었다. 친구를 만들고 담소를 나누던 점심시간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섭취의 시간으로 전락했다.
바이러스가 변화시킨 것은 급식실의 표면적인 모습만이 아니다. 새 학기가 되면 같이 밥을 먹자고 권하면서, 혹은 식사 후에 같이 교실 앞 복도에서 수다를 떨면서 아이들은 친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2미터의 보호구역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친밀감을 포기한다. 바이러스는 급식실의 원초적 역할만을 남기고 중요한 기능은 박탈해버렸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음식을 입에 넣고 소화를 시키는 것에 있지 않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즐거움을 느끼고 먹고 난 후의 나른한 휴식을 나누는 것이 진짜 먹는 것이다. 먹는다는 행위의 가치는 식사 그 자체보다는 식사 전후의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식사를 통해 상대방과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영양학과 생리학적 의미를 넘어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사회학적으로 더 의미가 있다.
아이들은 그동안 급식실이 선사해 왔던 관계맺음의 즐거움을 상실하고 있다. 급식실의 변해 버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친구를 잃어간다. 아이들이 급식실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유쾌함과 편안함으로 가득했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급식실이 제공하던 친구를 사귈 기회이다. 함께하는 것이 위험해진 세상에서 관계를 맺는 것은 가장 나중 순위가 되어버리며 신체적 안전의 보장은 관계의 부실함으로 대체되었다. 건강과 안전을 대가로 아이들은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 있다. 아이들이 급식실에서 잃어가는 것은 관계 그리고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