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600ml (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5분 더 끓입니다. 물 8 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 버린 후 과립스프와 올리브조미유를 넣어 잘 비벼 드시면 됩니다. 기호에 따라 오이, 양파 등 생야채와 곁들여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할머니! 나 짜파게티 끓여줘!” 현관문을 들어서며 할머니에게 외쳤다. 대답도 듣지도 않고 방으로 쏙 들어간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TV 앞에 앉아 할머니가 다 되었다고 부르기를 기다렸다. 고소한 짜장 냄새가 솔솔 났다. 지금쯤이면 다 되었거니 싶어 김치를 꺼내 식탁에 가서 앉았다. 냄비받침 위에 올려진 짜파게티는 국물이 흥건했다. 물 8 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 버리라는 짜파게티 조리법ㅁ을 할머니는 지키지 않았다.
“할머니! 이게 뭐야! 이게 짜파게티야, 라면이지! 이렇게 끓이면 이걸 누가 먹어! 처음 끓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엉망으로 하면 어떻게 해!”
짜증 섞인 화를 버럭 내고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짜파게티 하나 제대로 못 끓이는 할머니에게 화가 났다. 간단하게 조리하는 인스턴트 음식인데 이걸 못하다니 이해가 안 갔다. 맨날 끓여달라는 데로 잘해주더니 오늘은 할머니가 왜 저러나 싶었다. 결국 좋아하는 짜파게티도 못 먹어서 심퉁만 났다.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되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큰고모네 공장의 사고 소식을 들은 직후 할머니는 다용도실로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부엌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일어나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할머니의 다리는 그렇게 힘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는 자신의 두 다리로 혼자 서지 못했다.
할머니의 치매는 반신불수와 함께 왔다.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식사를 한 후에도 밥을 안 먹었다고 우겼다. 가끔 찾아오는 고모나 삼촌을 모르는 사람 보듯 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누군가는 손을 빌어야만 했다. 할머니는 방이나 거실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TV만 봤다. 할머니와의 대화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우리 집에서 할머니 곁을 맴도는 것은 강아지 다롱이 뿐이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십 년을 보냈다.
자리보전을 시작한 후 할머니는 우리 가족 모두의 짐이었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가끔씩 찾아오던 고모와 숙모들의 발길은 점점 뜸해졌고. 할머니를 모시는 일은 엄마의 전담이 되어버렸다. 치매로 정신이 맑지 못하고 거동까지 힘든 할머니를 보살피는 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노동이었다. 엄마가 안쓰러웠지만 나 역시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힘들었다. 엄마가 집이라도 비우기라도하면 할머니에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감에 전전긍긍해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할머니를 모시는 일은 오로지 우리 가족들만의 책임이었다. 삼촌과 고모들은 할머니를 외면했다. 멍한 눈빛으로 자리에 누워만 있는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할머니 방에서 나는 냄새였다. 세월이 만들어 내는 노인의 퀘퀘한 냄새는 아무리 목욕을 자주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냄새는 할머니의 주위를 맴돌아 할머니 방에 베었다. 환기를 시켜도 사라지지 않는 세월의 냄새, 질병이 가져다 주는 음습한 기운, 죽음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이 싫었다. 아무리 화사한 햇살이 방안에 가득해도 할머니 방의 기분 나쁜 냄새와 어두운 기운은 여전했다. 나는 할머니의 방에 될 수 있는 한 들어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세월 지켜 본 우리 가족 넷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일 년에 몇 번 잊혀질 때 쯤에나 찾아오던 고모와 숙모들만이 서럽게 울 뿐이었다. 할머니가 쪼그라들어 사그러질 때까지 바라본 건 우리들이었는데 그들이 더 슬퍼한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할머니의 죽음은 슬프고 허탈했지만 기나긴 고행이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 역시 컸다.
나에게 할머니는 엄마 못지않은 양육자였고 십오년지기 룸메이트였다. 나를 가장 예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손주였다. 하지만 엄마를 힘들게 하고 가족들 모두를 오랜 세월 지치게 한 할머니는 원망스러웠다. 할머니의 잘못이 아닌 걸 알았지만 그 마음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며칠 전 서재에서 만료된 여권을 찾다가 서랍 깊숙한 데서 할머니가 쓰던 오르골이 나왔다. 할머니의 사촌 조카가 미국에서 보낸 선물이었다. 삼촌과 고모들이 유품을 모두 가져가 버린 후 할머니 방 화장대에 놓여있던 것을 가져왔다. 하트 모양의 오르골 상판에는 세월이 준 흠집이 나있었다. Aunt, we love you. 나는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사랑한다는 말이 할머니의 유품에 새겨져 있었다. 뚜겅을 열었다. 소리가 나지 않아 태엽을 감았다. 느릿느릿 노래가 시작되었다. 즐거운 나의 집이다.
노래가 시작되자 할머니 방에서 나던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의 냄새가 났다. 눅눅하고 무겁게 내려 앉은 세월이 주는 냄새, 어릴 적 우리 가족에게 지워졌던 무거운 책임감의 냄새. 죽음과 늘 가까이 있었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를 이제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젠 할머니를 그만 미워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