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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ckie May 28. 2021

세렌디피티를 찾아서

오늘 들어온 책 1293권. 오늘은 꽤 많이 들어 왔네. 혼잣말을 속으로 넘기고 서점으로 향한다. 내가 읽을 만한 책이 있나 기대하며 구매 생각 없이 중고서점 문을 민다. 



나는 책을 아껴가며 읽는 편이 아니다. 생각나면 밑줄도 치고 여백에 낙서도 끄적인다. “책 상태 최상”이라는 주인장의 보증을 믿고 샀는데 예상치 못한 낙서와 얼룩을 발견하고 나서부터 중고 책만큼은 오프라인 매장을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집 앞에 중고서점이 오픈하고는 중고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가격과 시간 모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여유가 생기면 들르고 지나가다 방문하고 생각나면 일부러 돌아가서 보고 나오는 곳이 되었다. 친구에게 안부 전화하듯 중고서점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마음이 편해졌다. 



중고서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아직 분류되지 않은 책이 꽂혀 있는 G번 서가이다. 오늘 들어온 책을 임시로 넣어놓는 G번 서가는 아직 책 상태와 종류가 구분되지 않은 책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임시로 대기하는 곳이다. 혼란스럽게 꽂혀있는 G번 서가의 책들은 새로운 주인의 관심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다. 누군가의 눈길을 기다리며 알아봐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책뿐만이 아니다.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을 훑어보며 예상할 수 없는 책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읽고 싶었지만 잠시 잊었던 책은 아닌지 머리 속 위시리스트를 찬찬히 넘겨보며 보물찾기라도 하듯 책장을 찬찬히 살핀다. G번 서가에서 조우하게 되는 예상치 못한 뜻밖의 기쁨, 세렌디피티는 나를 중고서점으로 이끄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G번 서가를 둘러보다가 이미 읽어서 구매를 포기했던 책 <프레임>이 눈에 띄였다. 



“어, 이 책 엄청 재밌는데. 자기 이 책 안 읽어 봤지?”



남편에게 책을 보였다. 얇고 활자도 큼직한데다 소설책이 아니라는 데에서 남편 마음을 잡은 것 같았다. 뒷면을 보니 가격도 원래의 반값이다. 사놓으면 나도 한 번 더 읽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기대에 책 욕심이 난다. 얼마 전에 구매한 <생각의 탄생>도 옆 책장에 꽂혀 있다. 한 번도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듯 구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책 사기 전에 서점에 미리 와볼걸. 후회막급이다. 



반값 때문인 건지, 구매 목적 없이 왔다가 만난 책에 대한 기쁨 때문인 건지 한번 집어 든 책은 놓기가 쉽지 않다. 책을 사는 속도는 읽는 속도보다 빠르고, 책 후기를 쓰는 것은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도 책을 향한 무조건적인 소유욕은 자제하기 힘들다. 무소유의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라지만 어찌된 일인지 책을 향한 맥시멀리스트 기질은 사라질 기미가 없다. 



주말에 밖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오다가 중고서점에 들렀다. G번 서가에 꽂힌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이 눈에 띄였다. 표지는 사라졌지만 깨끗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우연히 만들어진 북클럽 회원들의 이야기가 담긴 사랑스러운 책이라고 책친구가 추천한 기억이 났다. 저녁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12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월요일 출근을 걱정하면서도 뒷내용이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왜 책을 읽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책친구에게 물으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변하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글을 쓰려고,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책을 읽는단다. 그들의 대답은 멋지지만 나에게 와 닿지 않는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 중이다. 다음날 다가올 장시간 운전의 압박과 수면시간 부족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월요일 새벽 1시까지 책에 열중한 나를 보면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툭하면 중고서점의 안부가 자주 궁금했던 이유가 이렇게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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