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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ckie May 28. 2021

음악은 그 시절과 함께 온다

그날은 예정 없이 퇴근이 늦었다. 쌀쌀해진 날씨와 엉켜버린 업무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고속도로 진입로는 막히기 시작했다. 집에 가도 밀려 있을 일을 생각하니 답답했다. 노래라도 들으려고 라디오를 켰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시작하고 있었다. 첫 곡으로 토미 페이지의 I’ll be your everything이 흘러나왔다. 라디오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선곡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토미 페이지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하던 가수였다      



당시의 토미 페이지는 요샛말로 하자면 꽃미남 아이돌 가수였다. 미국인이긴 했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외모는 서양인이었지만 동양인의 분위기를 풍기는 미소년이었다. 모성애 자극하게 생긴 여리여리한 외모에 부드러운 미성은 여고생인 내 마음을 쏙 빼놨다. 토미 페이지의 노래가 너무 좋아서 LP도 사고 카세트테이프도 샀다. 너무 많이 듣다가 테이프가 늘어날까 봐 걱정했고 LP는 스크래치가 날까 봐 아끼면서 들었다. 동생이 빌려달라고 해도 야박하게 굴었다.    


 

노래가 끝나자 배철수 아저씨는 건조한 목소리로 토미 페이지가 오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를 추모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헉!’ 소리가 절로 나면서 운전대를 잡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30년 가까이 잊고 있던 간질간질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얼음 가득 담긴 물을 쏟아부어 한 순간 얼려버린 것 같았다. 90년대 내한 당시, 토미 페이지가 얼마나 예의 바른 청년이었는지, 얼마나 훌륭한 아티스트였는지 기억하는 배철수 아저씨의 낮은 목소리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 심장 주위의 중력값만 높아진 것 같았다.     



두 번째 노래 A shoulder to cry on의 제목을 말하는 배철수 아저씨의 허스키한 목소리 뒤로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이면 옷깃 뒤로 숨겨서 몰래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사연이 소개되었다며 호들갑 떨었다. 그 사연을 들으면서 또다시 토미 페이지 노래 신청 엽서를 썼다. 또 선정되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사연을 꾹꾹 눌러썼다. 다른 누구의 엽서보다 눈에 띄라고 자습 시간 내내 색연필로 예쁘게 꾸며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내 가슴을 짓누르던 것은 그리움이다. 토미 페이지의 사망 소식으로 인해 그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친 것이 아니라, 그의 노래로 어지럽던 사춘기 시절의 위로를 찾던 소녀에 대한 보고픔이 가득 찬 것이다. 그리운 건 토미 페이지의 젊음과 노래가 아니라 미숙함으로 불안해하던 사춘기 소녀였다.      



토미 페이지의 노래를 좋아하던 여고생은 이제 사춘기를 훌쩍 넘긴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미숙함을 부끄러워하고 미래의 불안감에 홀로 떨던 소녀는 사라지고 완고해짐을 걱정하고 경직된 일상에 지루해지는 중년이 되었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지나온 날들은 더 그리워진다. 과거에 대한 애잔함이 더 짙어진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기다리던 첫눈을 만나 행복해 하면서도 이미 흘러가 버린 지난 가을의 사라진 낙엽을 동시에 그리워하는 마음과도 같았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게 서글퍼졌다.      



그날 저녁 고속도로 위 차 안에서 듣던 노래는 리듬과 음정, 그리고 박자로 구성된 산물이 아니었다. 그 노래를 듣던 사람과 그가 살던 시절, 그리고 그의 감정으로 이루어진 기억이었다. 노래는 사람과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몰고 온다. 토미 페이지의 노래는 나에게 과거의 순간을 열어 보여준 기억의 문에 달린 손잡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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