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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양 Apr 04. 2024

감시당하는 삶

어느 날 갑자기 집사가 되었습니다.

가을이가 오고 나서는 삶의 변화가 많아졌다. 적막하기 짝이 없던 우리 집은 웃음이 많아졌지만, 우리 집인데 우리 집이 아닌 그런 느낌이랄까?...


가정주부인 나는 집에서 24시간을 보내는 사람이기에 내 집의 안락함이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다.

아침에 집안일을 후다닥 처치하고는 유일하게 푹 꺼진 소파 가장자리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 나만의 힐링인데 먼가 모를 시선에 얼굴이 따가워진다. 


눈을 뜨고 감는 것이 나의 패턴에 맞춰진 가을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쳐다보느라 바쁘다. 

"고양이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잔다고 하던데 우리 애는 좀 이상하지 않아?"라고 했을 만큼 잠깐 졸기는 해도 마음 놓고 푹 자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조금의 기척에도 놀라서 일어나는 아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까치발을 들고 살면서 전등은 최소한으로 어둡게 해 놓고 TV볼륨도 최소로 낮춰서 보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내 집인데 왜 우리가 눈치 보는 거야?"라며 웃픈 소리를 했었다.



고양이가 주인을 쳐다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은 요구가 있거나 불만이 있을 때 빤히 쳐다본다고 한다. 고양이들은 주인이 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CCTV처럼 관찰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가을이는 문을 열려는 시도도 할 만큼 똑똑한 아이지만 대부분은 놀아달라거나 하는 경우이다.

놀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내 곁에서 얌전히 잠을 청하고는 하는데 내가 일어서거나 다른 일을 하면 그새 쫓아와 옆에서 기다린다. 


특히 곤욕이었던 것은 화장실 문제이다. 화장실에 가서 문을 닫아놓으면 문 앞에서 목청 높여 울고 목욕을 하기라도 하면 1시간 가까이를 욕실 앞에서 기다린다. 발냄새가 나는 발수건 위에서 말이다. 성묘가 될수록 독립적 여지면서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고양이는 우리 집에 없다.


고양이 집사가 되면서 생긴 로망은 멋진 캣타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가을이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커피 한잔 하면서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캣타워는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이다.

캣타워에서 나를 감시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을이다. 창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 있는 나를 잘 지켜보기 위해 캣타워에 올라간다. 가끔 새가 날아다니거나 무당벌레가 있을 때는 창밖을 보지만 대부분은 나를 지켜보는 용도로 쓰인다. 소파에 앉아있으면 아래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데 등을 돌리거나 소파쿠션으로 얼굴을 가리면 반대로 돌아와 나를 쳐다볼 만큼 꽤나 지독한 구석이 있다.

남편 말대로 얼굴에 펑크가 날 지경이다. 



고양이, 강아지 소리에도 관심이 없는 가을이는 오직 엄마바라기이다. 숨숨집을 좋아한다는 다른 고양이와 달리 항상 옆에 있기 때문에 숨숨집이 필요 없다. 저녁에 신랑이랑 티브이를 보고 있을 때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라며 TV에 분풀이를 하는 관종끼까지 가지고 있다.


혼자 있는 생활이 익숙했던 나는 가끔 탈출을 시도한다. 다행히 불리불안은 없지만 나간다고 말하면 눈치를 주며 째려봐서 짧게 장을 보고 오거나 커피 한잔을 마시는 정도이다. 신나게 놀고 나서 일찍 잠이 들면 그때야 말로 육퇴를 외치며 늦게까지 보고 싶던 TV를 보는데 그야말로 꿀맛이다.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독립적이라 키우기 수월하지 않아요?"라며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해준다. "케바케지만 우리 고양이는 전혀 독립적이지 않아요."라며..




낮잠을 잘 때면 엄마랑 함께 낮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는 가을이는 꼭 아빠 이불 위에서 잠을 청한다.

(물론 아빠가 오면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낄낄 빠빠를 정확히 안다. 눈치 백 단)

컴퓨터를 하면 엄마의 옆자리인 아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커피를 마실 때면 아빠 의자에 올라가 기다린다. 아빠가 퇴근하면 엄마 옆자리를 빼앗기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항상 껌딱지 모드이다.


아이 없는 우리 집은 뭐든 똑같은 게 두 개이다. 컴퓨터 의자도 두 개, 식탁의자도 두 개.

하지만 이제는 꼭 우리 사이에 가을이의 자리를 비워둔다. 그렇게 우리는 세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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