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광고회사는 인사이트를 남긴다. 그만큼 모든 일의 성패가 이 단어 하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클라이언트가 고민하는 지점에 대해 강력하고, 통렬하고, 깊이있고, 반면에 심플한 인사이트를 남기는 게 광고회사의 경쟁력이다. 좋은 인사이트는 무엇일까. 기준은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련하여 내가 좋아하는 예시가 있다. <퍼펙트 피치>라는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영국의 철도회사에서 새로운 구간 개통을 기념하며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다. 지역 A에서 B까지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공모받았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해저터널, 자기부상열차, 진공관 등. 놀랍게도 1등은 5살짜리 아이였다. 대답이 정말 기가 막히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간다.” 공모전에 참여한 어른들은 “빠른”이라는 속성을 물리적으로만 생각해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만 쏟아냈는데, 이 아이는 “빠른”을 심리적인 각도에서 바라봤다. 즉, 친한 친구와 얘기 나누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는 사실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다. 모두가 한 곳만 바라볼 때 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동시에 새로운 룰로 인정받는 것. 그것이 바로 인사이트라고 생각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중도의 감각을 잘 키워야 한다.
너무 새로운 것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라면회사에서 검은국물 라면이 나오면 안 사 먹을 것이다. 소비자가 그리는 라면의 범주 안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너무 익숙한 것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한다. 정말 좋은 라면이라고 출시했는데 들어가는 재료나 외형이나 기존과 다를 게 없다면 좋다는 것을 체감할 수 없다. 인사이트를 캐내려면 앞서 언급한 둘 사이에 나 있는 중도의 길을 잘 개척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한테 익숙한데 익숙하지 않은 것을 찾아야 되는 것이다.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이종교배이다. A라는 세계에서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a라는 요소를 B에 접목해 보는 것이다.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정재승 교수가 얘기한 닌텐도 위의 출시배경이 대표적인 예이다. 닌텐도 위는 닌텐도의 사내 워크숍에서 시작했다. 자동차 에어백을 활용한 게임을 만들라는 게 주제였다. 초반에는 자동차 에어백과 게임을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아이디어만 나왔다고 한다. 차가 멈추면 에어백이 터지는 포인트를 게임 상에 구현하는 것이 예이다. 시행착오가 거듭되며 시간이 흐르자, 이 둘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다. 에어백이 터지는 기술의 핵심인 자이로센서를 게임에 접목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인식하는 게임을 내놓은 것이다. 닌텐도 위. 진정한 이종교배의 예이다.
예술작품의 인사이트를 계속 업데이트 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학창시절에 알게 된 2개의 작품은 아직까지도 인사이트의 원천으로 써 먹는 재료들이다. 첫 번째는 마르셀 뒤샹의 <샘>이다. 뒤샹의 서명이 들어간 변기. 그런데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회에 출품했다. 이것은 미술에 대한 정형성의 파괴이다. 미술은 엄숙하고 아름다우며 미술가의 완결적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룰을 깨부쉈다. 기성 제품이라 할 지라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의미있다면 훌륭한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관철시켰다.
두 번째 작품은 음악인데, 존 케이지의 <4분 33초>이다. 처음에 듣고 충격먹었다. 왜냐하면 4분 33초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곡을 연주하는 영상을 보면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그저 멍하니 앉아있고, 지휘자는 땀만 닦고 있다. 의미가 무엇일까. 존 케이지는 이 곡이 소리로 가득차 있다고 말했다. 악기 소리가 멈춘 시간 동안 사람들의 발 구르는 소리, 기침 소리도 들릴 거고 밖에 비가 오면 비오는 소리도 들릴 수 있다. 존 케이지는 그동안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외부의 소리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연주만이 음악이 아니라는 점을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음악은 안과 밖의 경계가 없이 모두 음악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좋은 인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경험이다. 쭉 써놓고 보니 정말 할 게 많다. 인사이트는 우리가 흘린 구슬땀만큼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