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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Nov 22. 2023

"미안하다!"

다시 또 미국

두 달 반 전 다시 미국에 왔다. 영어를 할 때면 흥미롭게 느끼는 표현이 있다.

누군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그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가 아님에도,

"I'm sorry to hear that" 이라는 표현을 쓴다. 미안하단다.


실은,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며 상대방을 위로할 수는 있어도 미안할 필요까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언어는 위로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묘하게도 그런 적극적 표현이 과잉의 위로 내지는 가짜 위로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문장의 시작에 "나"라는, 말의 책임의 주체가 들어가서 그런 건가. 

미안함의 표현 속에 대화 속에 있는 상대방과 내가 하나로 연대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면서 그 말의 힘을 증폭시키려 하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광고일을 하면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금기시했다. 선배의 혹독한 가르침 때문이었다.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면 정작 중요할 때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다.

클라이언트를 우대하는 목적에서 "죄송한데요"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쓰다보면

정작 미안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죄송하다"가 적절한 대처의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미안함"이 희소하게 되면 그 말이 진심으로 들리고 증폭이 될 확률이 클 뿐더러,

"이 사람은 진짜 미안한 상황에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구나"라는

판단이 바르고 프로페셔널한 이미지 또한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엔 선배들이 얘기하는 "광고대행사의 가오"라는 측면도 내포돼 있었다.

클라이언트한테 쉽사리 무릎꿇지 말라는.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다는..


재밌는 게, 이웃나라 일본은 "미안하다"는 표현이 온 나라를 범람한다.

식당에서 점원을 부를 때도, 부탁을 할 때도, 구름 속 인파를 지나칠 때도, 의견을 제시할 때도...

"스미마셍"이라는 표현이 많은 상황들을 관통한다.

앞서 얘기했던 우리의 자존심과는 반대인, 그들의 "반가오적 정서"를 대변한다.

내가 먼저 고개를 숙임으로써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궁극적으로는 사건 발생의 확률을 현저히 낮추며

좋게 말하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고 달리 말하면 내 문제를 적극 대면하지 않는 그런 심리 같다.


"미안하다"로 연대하는 미국의 문화

"미안하다"에 다소 민감한 한국의 문화

"미안하다"로 질서를 유지하는 일본의 문화


같은 말인데 문화에 따라 달리 써 먹는 쓰임새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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