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작은 아이의 오른쪽 쇄골골절이 시작이었다. 어깨에 팔자붕대 보조기를 낀 채로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날다람쥐 같은 아들은 여전히 위험하게 소파에서 뛰었고, 놀다가 벽에 부딪치고, 넘어졌다.
집안에서도 이러는데 바깥을 나가는 건 더 위험해 보였다. 아니, 나가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날다람쥐 아이를 지켜보는 내가 더 불안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다음 주에는 큰 아이의 코로나 확진.
고열로 이틀째 되는 날 자가 키트를 했고, 두 줄이 바로 나왔다.
밤새 뒤척이는 아이는 코가 매우 맵고 따갑다고 했는데 평소와 다른 느낌이 싸하게 느껴졌는데 역시, 엄마의 촉은 무섭도록 정확할 때가 있다.
기운이 없는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제출할 확진 진단서를 받으러 병원을 갔다. 작은 아이의 다치지 않은 왼손을 잡고 가는데 큰아이가 힘이 없고 몸이 아프다며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천천히 걸어 겨우 병원에 도착했다.
확진 진단서와 함께 코로나 약을 받고 아이들 마음에 위로가 될만한 (평소에 잘 안 사주는) 초코 빵과 젤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쉬어야겠다며 침대에 가서 스스로 누웠다.
몇 분 안 되는 거리를 걷는데도 휘청거리며 매우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에 처음 걸린 코로나가 더 독하게 지나가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다. 그렇게 며칠밤을 열 보초를 하며 아이는 점점 나아져 가는 게 느껴졌다. 일주일 정도 지나고, 아이는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큰아이가 정상 컨디션을 찾고 다시 나아질 때쯤,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 남편이 그동안 세 번이나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도 철저하게 분리 생활을 한 덕분인지 바이러스를 잘도 피해서 가족 모두를 지켰었는데, 아이가 걸리고 아이를 돌보다 보니 엄마인 나는 자동 확진이 된 기분이었다. 오한과 몸살로 주말 내내 내가 독방생활을 했다. 삼 일째까지 새벽 내내 오한이 와서 혼자 추가로 진통제를 찾아먹어야 했다. 그러다 문득 서글픔이 올라왔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나는 새벽마다 남편이 자는 방에 들어와 남편의 열을 재고 약을 챙겼었다.
아이들이 아플 때에도 밤새 잠을 설치며 아이들의 열을 재고 약을 챙기는 건 나의 몫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플 때조차, 밤새 나를 챙기는 것도 결국 나인가.
내가 나를 홀로 챙긴다는 생각에 서러움 비슷한 게 느껴졌다.
사람이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과 방법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주말 이틀 동안 남편은 미각과 후각을 잃은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고민하며, 음식을 다양하게 차려줬는데도, 그런 배려는 그 새벽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 번도 와서 체온계를 내 귀에 꽂아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했다.
필시 아파서 별게 다 서운한 마음이라는 걸 머리는 아는데도, 마음의 서운함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아파서 그런 거다. 분명, 아파서 더 서운한 게 분명하다.
내가 일주일을 앓고 나니 그다음차례는 작은 아이였다.
이럴 거 모두같이 한꺼번에 걸렸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마음까지 올라온다.
일주일씩 돌아가는 릴레이 코로나는 더 지치는 기분이 든다. 셋이 매일을 붙어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이럴 거였으면, 내가 굳이 마스크를 쓰는 것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불편하게 자지나 말걸 그랬다.. 하는 후회와 함께 작은 아이의 돌봄은 시작되었다.
다행히 작은 아이는 증상이 심하지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잘 뛰고 놀았다.
코로나에 심하게 걸리지 않아 감사하기도 했지만, 활발하게 노는 아들이 다친 쇄골에 무리가 갈까 봐 잔소리도 끊임없이 하는 나의 모습이 별로 내키지도 않는 일상이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 아이 둘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내 시간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홀로 시간이 필요한 나란 사람에겐 마음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무려 한 달의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다.
나는 한 달 동안 매우 예민했고, 화가 많았고, 코로나 후유증으로 체력은 반 토막이 났다.
코칭 공부와 수련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고 모든 수업과 수련을 진행했다.
하지만 모든 걸 하면서 내적갈등은 마음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더 큰 다음에, 내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해야 되는 게 맞았을까.
아이들을 독박 육아하는 나에게 나를 찾겠다고 하는 공부는 사치였을까?
예전의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든다. 마음이 취약할 때 나는 내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것보다 모두가 좋은 것? 을 추구하는 방향이 맞는다고 생각해 버린다.
[엄마이자 나로 살기]로 다짐해 놓고선 나보다 어쩌면 더 소중한 아이들과의 일상에서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내 것은 뒤로 물러나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사실 물러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예전에 아무것도 날 위해 하지 않았을 때 더 신경질적이었고
감정적이었고, 더 우울했으니까.
그냥 생각이 그렇게 치우치는 날일 뿐일 거라고, 내 마음을 다독인다.
지금 너무 여유가 안되니까. 쉴 시간이 없고 지치고 힘드니까.
이럴 때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게, 오롯이 다 감당해야 하는 이런 상황들이 가끔 야속하기에,
그런 후회를 하면서 잠시 잠깐 그 생각 속에서 현실을 회피해 보곤 한다.
한 달 동안 일기장이 빼곡하게 찼다. 마음이 그만큼 혼란하고, 버거웠다는 것이리라.
오늘은 찬찬히
일기장을 살피면서 내 마음에 머물러 봐야겠다. 그리고 애쓴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줘야겠다.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졌고, 모든 게 잘 지나갔으므로
이제 좀 편안하게 일상을 돌보자고 생각해 본다.
한 달의 흐름을 쭉 쓰다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더 가벼워질 수 있었던 오늘의 이유는
남편은 출근했고, 큰아이는 등교했고, 작은 아이가 등원을 했기 때문이다.
드. 디. 어 한 달 만에 오늘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의 혼자만의 시간은 이토록 소중하다는 결론!(별 다섯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