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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Sep 04. 2021

[역마살과여행 의지-고성 02]

I♡알파카

[2020년 11 24일]


오전엔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

카페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하고

느지막이 녀석을 깨워 꽃단장을 시켰다


1층 숙소는 일단 천정이 높은 것이 녀석의 마음에 쏙 들었다

바다로 열린 문은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고

고급스러운 자재들과 조명으로 유럽에 온 기분이 드는 곳이다


문득 이런 곳에서 일주일쯤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쯤 내게 그런 긴 휴가가 주어질지 까마득하다





자작나무 사이로 비치는 겨울 햇살을 만나고 싶었던

나의 로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제쳐서

햇살은커녕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일단 가보자는 녀석

주차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느낌이 싸했다


역시나 입산은 기상악화로 마감되었다


녀석은 웬일로 나를 챙긴다


"그냥 입구에서라도 찍자. 사진만 보면 아무도 모를 거야."

"해가 없잖아."

"보정하면 되지."


녀석의 넉살에 꽁했던 기분이 스르르 풀린다

주차장 근처에 있는 자작나무들 앞에서

녀석은 아무도 없는 숲 속 인양 포즈도 취해본다


녀석의 노랑머리가 해처럼 따뜻하다


산에 오르느라 고생도 안 하고

인생 샷도 건졌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흐린 날씨가 고맙기까지 했다





자작나무 숲에 못 들어간 덕분에

우린 다른 곳에 들릴 시간을 얻었다


이름 때문에 애기들이나 커플들만 재밌는 곳이 아닐까 싶고

그냥 산책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입장권을 샀다


생각보다 넓은 공원에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녀석의 영혼을 빼앗은 존재는

역시 알파카였다


곳곳에 놓여있는 간식 자판기에서 간식을 사고

만나는 알파카와 교감을 나눈다

물론 이놈들은 간식에만 집중하지만

처음 보는 귀여운 생명체에 녀석은 완전 신이 났다


공원은 예쁜 포토존과 산책길,

토끼, 부엉이, 기니피그 등 온갖 동물들이 가득했다

전체적으로 다 돌아보려면 해가 질 것 같아서

적당한 코스를 골라 열심히 걸었다


하이라이트는 <알파카와 산책하기>였다

알파카는 색도 크기도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다

산책 체험에서 원하는 알파카를 고를 수는 없고

순서대로 직원이 컨디션 좋은 녀석을 짝지어준다


우리와 인연이 된 친구는 한점이었다

무조건 간식만 보고 직진을 하는 녀석들이라

주의사항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간식을 조금씩 나눠서 간격을 두고 유혹해야

원하는 코스로 산책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

강아지처럼 말을 듣거나 교감을 통한 산책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녀석들의 눈빛은 마치 뭐가 말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우주 어딘가에서 온 신기한 생명체 같은 느낌이랄까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 녀석은

산책 내내 한점이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날이 흐렸지만 손님이 없으니 오히려 더 한적하고 좋았다


큰 기대 없이 왔던 곳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게으른 브런치를 쓰고 있는 지금

이렇게 지난 사진과 글을 보니 좋은 점도 있다


1년 넘게 계속되는 코시국 한복판에 서있으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다


알차고 편안하게 휴식을 보낸 모녀는

에너지 만땅 충전하고

다시 정시 전쟁을 치르러 씩씩하게 출발한다!!!


또다시 떠날 녀석과의 여행을 꿈꾸면서 말이다


글ㆍ사진  kossam

*사진은 퍼가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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