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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달빛 May 16. 2023

인형은 살아있다




"엄마 인형들 한테는 다 생명이 있어."

"살아 있지만 말은 못해."

"우리가 없을 때 모여서 이야기를 해."

(외출 했을 때) "지금 시바가 인형들하고 놀고 있을거야"



'시바'는 첫째아이가 가장 잘 갖고노는 아지 인형다. 유독 다른아이들 보다 인형에 애착과 사랑이 깊은 첫째아이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에는 크리스마스나 생일 날 소원을 빌 때면 인형들이 말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소원을 빌 정도였다.

정서적 교감이 잘 이루어졌다고 해야할까?

이런 귀여운 발상을 들을때면 나도 그 상상력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더 재밌게 대화를 이어간다.


"지금 시바가 효은이가 오고 있다고 인형친구들한테 알리고 있어."

"인형친구들은 우리가 잘 때 사람들이 잔다고 신나서 놀거야. 큭큭"


그럼 아이의 얼굴에도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지며 한참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얼마 전 아이는 더 귀여운 이야기도 해 주었다.


"엄마, 인형이랑 안 놀아주면 딱딱해져. 봐바, 몇일 안 놀아줬더니 조금 딱딱 해 졌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을 주고받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딱딱 해 진다는 걸 표현한 것 같아 영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도 솜 인형인데 말이다.

그러고는 바로 안으며 말 걸어주고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만지더니,

"이제 말랑해 졌어." 라고 말한다.



인형이나 동물, 귀여운 모든것에 사랑을 느끼는 첫째아이를 보며 왜 그럴까 생각에 잠기다

어릴적 나를 다시 기억에 끄집어 내보았더니 그 속에는 딸과 똑 은 어린 내가 있었다.

눈앞의 딸 처럼 감수성 풍부한 소녀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 역시 마찬가지 였다. 어릴적 나는 어딘가 모르게 불쌍해 보이는 동물, 위기에 처 해있는 동물, 아픈동물 들을 보면 꼭 내가 그렇게 된 거 마냥 마음이 저려왈칵 물이  오르곤 했다. 그런 동물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꼭 직접 도와주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동물들을 도와주는 수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그러다 어린마음에 '그런데 치료하면서 동물이 내 손을 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들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지만. 제일 좋아하는 TV프로그램도 당연히 동물농장 이였다.


내가 이렇게 된 이유에는 당연하게도 집안환경이였다. 어린시절 키워왔던 동물에는 대형견인 세퍼트와 진돗개 부터 시작해 말티즈, 믹스견, 금붕어, 거북이, 토끼, 애완새 거의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애완'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것은 거의 다 키워 봤던것 같다. 그 중 토끼는 7년을 키웠다.


이런 자칭 동물박사인 나의 어릴적 기억 중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가 9살이 된 여름이 시작 될 무렵 이였다.

여느 때 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와 묵직한 대문을 었다. 그런데 항상 마당에 묶여 발랄한 인사를 했던 믹스견 '또뽀' 가 마당 여러군데에 토를 해 놓은 것이다.

토 속에는 기생충도 나와 꿈틀거렸다.

또뽀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걸 그 당시 어린 나도 느꼈다.

아픈 또뽀는 팔 다리를 쭉 뻗어 옆으로 누워서는 힘들어 하고 있었다. 숨을 거칠게 쉬는 또뽀를 보며 빨리 병원으로 데려 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9살짜리 무슨생각 이였는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였는데, 오며가며 본 그 거리에 동물병원 있었던 기억이 번뜩 나 조금 멀었던 그 동물병원에 가기위해 또뽀를 안고 집을 나섰다.

목줄이 채워진 상태였지만, 또뽀가 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두 팔로 안고 한참을 걸어갔다. 가는내내 안절부절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사람이 없는 허름한 동물병원 이였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아지가 아파서 왔다고 부르니 조금 뒤에 한적한 가게 안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왔다. 아직도 나는 그분이 의사인지 의문이다.

빨리 어떻게든 또뽀가 나아서 다시 잘 놀았으면 하는 초조한 마음에 증상에 대해 털어놓았다.

내 말을 듣더니 그 의사는 이 주사를 맞으면 된다며 정말로 큰 주사를 꺼냈는데,

그걸 보고 '이 주사를 우리 또뽀한테 맞힌다고?'그걸 맞게 되면 우리 또뽀가 너무 힘들어 할 것 같았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좀 아닌것 같았다. 다른 병원에 가고싶었다.

하지만 9살이였던 나는 자리를 박차고 또뽀를 안고 나가 다른 병원을 둘러볼수가 없음을 알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 처방에 따랐다. 곧 이어 그 큰 주사를 놓자, 또뽀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을 질렀는데, 또뽀 에게서 처음듣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해져 왔다. 그렇게 그 의사 만족러운 표정으로 이 집으로 데려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린 내가 강아지를 안고 걸어가는게 걱정이 되었는지 비닐봉지를 주면서 여기에 또뽀를 담아가라고 했다. 나에게 건네준 그 비닐봉지 또 한번의 충격이.

어떻게 살아있는 동물을, 그것도 우리 또뽀를 비닐봉지에 넣어 가라고 하는지

'우리 또뽀는 물건이 아닌데...' 어린나에게 큰 상처였다.


병원에서 나와 또뽀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얼른 집에가서 또뽀를 위로 해 주고 싶었다

얼마쯤 걷고 있는데 내 핑크색 슬리퍼 위로 무언가 뚝 뚝 떨어져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지..?' 검붉은 무언가가 떨어져서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바닥에 검붉은 점이 뚝 뚝 뚝 흘려져 있었다.


놀라서 바로 또뽀 얼굴을 보았다.

또뽀는 눈을 뜬 채로 죽어있었다. 그 때 봤던 또뽀의 눈은 초록색 이였다. 너무 놀라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피는 주사를 맞았던 엉덩이에서 나는 것이였다. 이제 또뽀랑 끝이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나 절망적이였다. 딱딱하게 굳어서 무거워진 또뽀를 안고가면서 내가 안고있는 또뽀죽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집으로 와서 오빠와 함께 집 앞 놀이터로 가서 열심히 흙을 팠다. 또뽀를 어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동네 아이들이 기웃기웃 와서 우리가 뭘 하는지 보는것도 싫었다. 우리가 가고나면 아이들이 파 볼 것 같아서, 정말 깊히 팠던걸로 기억난다. '우리 또뽀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슬다. 그 뒤로도 또뽀가 뭍어진 곳을 멀리서 보며 그 곳을 지나다녔는데, 1년 뒤엔 하얀 뼈다귀가 보였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또뽀의 기억은 아프게 남아있다. 그 뒤로 강아지를 키우면 뽀생각이 많이 나곤 했다.



어린시절 얽힌 이야기들을 기억 해내고 나니 잠들때에도 다리밑이며 머리맡에도 인형들을 차례차례 정리를 꼭 하고 자는 딸이 이제 이해가 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도 잊고 살았다. 나 또한 그랬었다는걸. 딸이  귀엽고 풍부한 감성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간직하고 있을?

그 따뜻한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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