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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달빛 May 06. 2023

이제 부끄럽다고.

10살, 사춘기 시작?


"이제 씻어. 엄마는 좀 쉴게."

일을 마치고 저녁거리가 없어 간만에 주방에 오래 서 있었더니, 밤 9시가 되자 급격히 피곤함이 몰려왔다.


내 체력은 오늘로써 다 썼다는 느낌의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이 이제 씻자며 둘째와  욕실로 들어다.


두 딸들은 스스로 씻지만 꼼꼼히 마무리를 시켜주고 싶은맘에 매일 내가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아이들 아빠가 들어갔다.


그렇게 편하게 누워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첫째는 옷도 벗지 않고 꼼지락 꼼지락 책상 앞에서 책상 정리를 한다.

평소 정리정돈 문제로 나와 지독히도 줄다리기 했던 첫째인데 왠일로 책상정리를 하다니,

씻기 귀찮은가보다. 생각과 동시에

"책상 정리하는거야? 스스로 할 줄도 아네."

슥 칭찬을 해 주었다.


그 후로 첫째는 대답도 없이 오랫동안 어지러운 거실을 치.

더 이상 치울게 없어지자 동생이 다 씻을 무렵 기어코 느릿느릿 화장실 앞에서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때 이해가 갔다.

'아, 아빠랑 씻는게 싫구나...'


갑자기 내가 들어가서 아빠와 씻는 걸 막으면 그림이 이상할까봐 그냥 두었다.

'앞으로는 나와 씻어야겠네' 생각 하면서 말이다.


욕실 안에서 남편이 첫째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건네는데,  들리는 대답이 시원찮다.

아빠에게 벗은 모습이 부끄러워서, 아빠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얼마 후 나온 첫째는 안 좋은 표정으로 이불 안에 푹 들어가 몸을 목 까지 가려버린다.


그래서 자기 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씻는 건 엄마랑만 씻을까?"

라고 물으니 그러자고 했다.


아빠랑 안 씻을거라고 말 하지 그랬냐고 말하면서 동시에 생각을 했다.

평소에 자기주장이 강한 첫째가 자기스타일을 고집 할때면 한번에 받아 들여주지 않았고,


아이에게 올바른 방법을 제시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자유분방한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닫아버린것 같았다.


아이 입장에서는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나도 계획이 있고 생각이, 이유가 있는데..

내가 바른길로 제시한다는 그런 이유만으로

"그건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이렇게 해야지"

라며 아이 의견을 너무 수용하지 않은건 아닌가,


이렇게 쉽게 말 할수 있는것도,

자기의견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까봐 그런것 같았다.

첫째에게 미안했다, 그런 꽉 막힌 부모가 되고싶지는 않았는데..


또 계속 자책하면 끝이 없으니, 이쯤하고

불편하거나 그런 일이 있으면 말 해 달라고 했다.


문득 이 글을 쓰면서

첫째가 병원에서 나와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남편과 임신막달에 미리 사놓은 아기욕조를 꺼내놓고 둘이서 끙끙 거리며 조그마한 아기를 들고서 샴푸질을 했던 기억이 났다.


너무나 작아서 만지면 부서질라 놓으면 깨질라 물레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 처럼 손길 하나 하나에 온 신경이 집중 되고 조마조마 했던 아기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기고 귀엽다.

우리 아이도 그 시절 우리도..

그런 아기가 이렇게 아빠와 목욕을 못 하는 날이 오다니. 아이가 크는 한 해 한 해가 꿈을 꾼 듯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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