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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하 Nov 04. 2024

43. 마녀 토벌 (3)

마녀들이 잡혀온 지 한 달이 넘은 어느 날.

테스가 지하감옥으로 찾아와, 수하들을 시켜 마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을 때였다.



“…원래대로라면 에크나르프에서 태어났어야 했을 텐데… 어째서 신탁이 이런 저주받은 땅을 선택한 것인가….”


“?”



테스는 구석에서 혼잣말을 중얼중얼 대는 마녀를 보게 되었다.

일명 ‘늙은 마녀’ 라고 불린다던 그녀는, 오랫동안 음식을 거부한 탓인지 깡마른 팔목이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직접 들어본 적 없는 ‘신탁’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된 테스가, 다음 날 새벽에 몰래 그녀를 찾았다.

자신의 죽을 자리는 여기라며 모든 것을 거부하는 마녀에게, 거듭거듭 사정한 끝에 간신히 독대할 수 있었다. 



“에토르 대륙이 수백 년을 기다려온 신탁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에토르 신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귀한 사람이지요.”


“그럼.. 그 신탁의 내용을 좀 말해줄 수 있을까.”


“……”



신탁의 내용을 들은 테스는 이를 이용하면, 마녀와의 공생을 통해서 제르만이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크나르프처럼 그들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선대에서 꼬여버린 마녀들과의 관계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진짜인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할 가치가 있어.’

‘이대로 이들을 죽게 하는 건 잔인한 학살일 뿐이야.’



이야기를 마친 테스는 그녀에게 국왕에게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 말하며, 원한다면 몰래 공작 저택에 안전하게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늙은 마녀는 자신이 지금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며 거절하고 다시 원래 있던 감옥 안으로 돌아갔다.


테스는 그녀를 쫓아간 뒤, 곧 돌아오겠다며 인사를 남겼다.



“이 땅에서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어. 당신들도, 우리도.”


“……”



그 말에 이렇다 할 답은 그녀에게서 없었지만, 그는 양쪽 다 잘 설득한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테스는, 날이 밝자마자 마크윈을 알현하기 위해 성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은 그는 언짢은 기색을 표하다가, 테스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그건 안될 말이야! 이제 와서? 아니.. 그들이 역병의 원인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이제 와 다른 소리를 한다면, 그건 어떻게 책임을 질 텐가?”



당신 때문에 소문난 거잖아.

진상이 파악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니까 쓸데없이 일을 벌여서…


어처구니없는 그의 변명에 미간이 찌푸려지던 테스가 마음을 다잡았다.



“방법은 찾으면 됩니다. 전하.. 시간이 지나면 역병은 가라앉을 테지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에크나르프에서 보셨듯이, 마녀가 모두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아닙니다.”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 마크윈은, 테스를 흘겨보았다.



“바로 자네의 아버지가, 그 마녀들을 토벌했었다는 건 알고 하는 소리겠지?”


“…그 때야 그들이 내란에 이용되었으니까요.”


“설령 좋은 마녀가 있다고 해도, 그들을 나쁜 마녀와 어떻게 구별할 거지?”


“구별할 수 없다고 모조리 죽이는 건 옳습니까?!”


“……”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그리고 마녀들을 향한 나쁜 여론으로 어느 정도 역병의 진노가 수습되었다 생각하는 마크윈은 거칠게 거절했다.

테스는 계속해서 그를 설득하려 노력했고, 이야기가 길어지며 시간은 오전 열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타박타박



“안녕하십니까, 왕자님.”


“아바마마는?”



샌드위치와 함께 차를 마시기로 약속했던 리온이 마크윈을 찾아왔다.

시종은 눈치를 보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지만 안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


“?”


“아.. 그게 왕자님.. 공작님께서 찾아오셔서 지금 대화중..”



이게 대화라고?

싸우는 소리 같은데?



분위기로 대충 파악되는 안쪽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리온은 문을 열어젖혔다.



“왕자님!”



기겁하는 시종을 뒤로한 채 안으로 들어간 리온은, 빈 응접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옆 방과 연결된 문은 살짝 열려있었고, 말소리는 그 안에서 흘러나왔다.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 슬쩍 지켜본 모습은, 이제까지 자신이 봐왔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늘 공작에게 쩔쩔매는 모습이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기도, 답답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싸우고 있었다.

다름 아닌 마녀로.


...응? 마녀?



“신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늙은 마녀뿐 아니라, 모든 마녀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하고요.”


“다 같이 입을 맞춘 것일지도 모르지 않나.”


“듣고 난 다음에, 충분히 확인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도 신탁의 가치를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무슨.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불과해. 대륙이 나뉘기 전에나 있었던 것 아닌가?”



신탁?

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리온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내용에 집중했다.

그리고 마녀들의 처형을 반대하는 테스와, 그들이 역병의 원인이라 치부하는 마크윈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토르 신이 선택한 사람..?’



테스가 마크윈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이야기를 꺼냈지만, 정작 둘의 대화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몰래 엿듣던 리온이었다. 


그리고 제르만을 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은, 마크윈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불이 붙었다. 



“…마녀를 찾아가 봐야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온 리온은 호기심에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은 왕자님이 보실만한 환경이 아니라며 그의 출입을 막았다.



‘어떡하지.. 마녀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돌아온 리온은, 무언가 생각하더니 왕궁의 지하에 있는 비밀서고로 향했다.




제르만의 전역에 퍼졌지만, 왕실과 귀족들의 집안까지는 침투하지 못했던 전염병.


저주 탓인지 아니면 잠복기를 지난 탓인지, 어느 날부터 마크윈을 비롯해 여러 귀족들에게도 퍼져나갔다.

온몸에 퍼지는 발진은 도무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고열과 환상에 시달리던 귀족들 중 몇은 자신도 모르게 발코니에서 몸을 던지는 일이 생겨났다.


왕과 귀족들.

모든 것을 가졌다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따로 격리되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후에 마녀가 저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크윈이, 지하감옥으로 내려가 병을 치료할 방법을 묻고 그들에게 얼른 치료하라 강요했지만 누구 하나 듣는 이는 없었다.

이미 끔찍한 현 사태에 마음이 돌아선 마녀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굳혀 그대로 죽음을 선택하며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중얼거렸다.



결국 마녀들을 죽이지 않고는 이 병이 나을 수 없다 생각한 마크윈이, 모두의 의견을 듣겠다며 표면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각 귀족들의 저택에 사람을 보내어, 마녀들에 대한 판결을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해 서신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지하감옥에서 마녀가 왕과 귀족들을 저주했다는 내용이 퍼지는 바람에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들 전체가 처형되길 원했다.

추방 정도로 마무리를 짓고 신탁에 대해 따로 조사하고 싶었던 테스도, 윌리엄과 함께 병으로 앓아눕게 되면서 더 이상 그들을 지켜줄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제르만의 기성 세력들을 모두 병에 걸리게 만든 것은, 제르만의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이미 민중들 사이에서도 그들이 범인이라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



만월이 지하감옥의 창살로 빛을 들여보내던 어느 날 밤.


성의 감옥 안에 있는 마녀들은 죽음을 각오하면서 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음의 높낮이도 크게 없는 그 노래의 분위기는 너무 음산해서, 간수들이 그만 두라며 귀를 막고 소리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몇 시간 뒤, 검은 구름에 달이 가리어졌고 마녀들의 노래가 멈췄다.



다음 날, 지하감옥에 갇힌 마녀들 중 다섯을 대표로 뽑아 재판을 열었다.

모든 것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흘러갔고, 재판을 지켜보는 분노에 휩싸인 민중들 앞에 ‘교수형’ 이라는 결과를 들려주었다.



“와아-!!!”


“그래!! 마녀를 처단해!”


“불태우라고!”


“……”



마녀들은 부당한 결과에도, 이미 예상한 듯 아무런 저항이나 반박도 하지 않았다.

재판장에서 끌려 나온 마녀들은 다시 지하감옥에 갇혔고, 서로 그간의 삶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마녀들이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리온은 서둘러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자신의 전담 시종에게 많은 돈을 쥐어주고, 그를 통해 간수들의 눈을 따돌렸다.



“윽..”



살이 타는 불쾌한 냄새와 더불어 비릿한 피냄새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감옥 안에 있는 마녀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공작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리온이 찾아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감옥 문 앞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는 마녀를 만났다.



“…당신이 신탁에 대해 말한 그 마녀야?”


“…귀한 분이 발걸음 하실 곳은 아닌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당신이 필요해서.”


“……”



바로 거절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늙은 마녀는 한참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선뜻 말을 붙이기 어려운 침묵.. 

리온이 준비한 다른 제안을 건네려 입을 뗐을 때였다.



“저를 이곳에서 꺼내주실 겁니까.”


“물론이지.”



리온은 미소를 지으며 열쇠꾸러미를 들어 보여주었다.

늙은 마녀는 뒤를 돌아 생기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마녀들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다시 만나자..”



열린 문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온 늙은 마녀는 흐르는 눈물을 후드로 덮어 가리고 리온을 따라나섰다.

그녀를 창고로 데려간 리온은 갈아입을 옷을 건네주며 자신이 망을 볼 테니 서두르라고 전했다.



“지금 당장은 성 안팎의 경비가 삼엄해서, 오히려 내 방이 안전해. 곧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여관의 옷으로 바꿔 입은 늙은 마녀는 리온의 방 안에서 생활했다.

넓은 왕자의 방은, 그녀 한 사람쯤 숨어 살기에 어렵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교수형 당일이 되었다.

많은 인원들이 움직이는 날, 리온은 이 날을 마녀와 탈출할 기회로 꼽았다.


시종의 도움으로 성 밖으로 빠져나간 두 사람은, 광장에서 열리는 교수형을 보고 싶다는 마녀의 부탁에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저주와 분노가 섞인 말들은 목에 줄이 걸린 마녀들에게 향했고, 아무런 반응조차 없던 그들은 그대로 발 밑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와아아아-!!”



그들의 죽음으로 역병이 끝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한 편으로는 사람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축제처럼 즐기는 이 모습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다시 돌아오리라… 울지 마라, 신의 아이들아…”



이제껏 큰 감정의 동요가 없던 늙은 마녀는 그들의 죽음 앞에서 결국 무너져버렸다.



‘반드시.. 내가 반드시 너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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