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세계

에세이

by 오레오


1. 참된 명제란, 현실세계에서 참(眞)일 명제이다
2. 가능한 명제란, 적어도 하나의 가능세계에서 참(眞)일 명제이다
3. 우연적인 명제란, 그것이 참(眞)인 가능세계도, 거짓(僞)인 가능세계도 존재할 명제이다
4. 필연적인 명제란,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眞)일 명제이다
5. 불가능한 명제(필연적으로 거짓인 명제)란, 모든 가능세계에서 거짓(僞)일 명제이다

과장을 섞지 않아도 이 세계는 이미 충분히 절망적이다. 현실세계는 특정 명제가 그 존재만으로도 끊임없이 참과 거짓으로 나뉘는, 심지어 참일 확률은 거짓일 확률에 비해 너무도 희박한 상황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세계로 도망친다. 여러 방식으로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들이 일어나는 세계의 집합 속 내가 바란 결과값은 어딘가에라도 연역적으로 계산했을 때 참인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가능세계에선 가능하다. 누군가 현실에 창조된 세계를 ‘모든 가능세계 속에서 최선의 것으로 이루어진 형태’라 정의할지라도,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현실세계의 그것에 어긋나서 발현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가능세계 어딘가에서 살아숨쉬고 있다.

참된 명제란 결국 현실세계에서나 참된 명제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불가능’의 선택으로 결론내리기 위해서 우리는 수많은 가능세계 속에서, 모든 경우의 수에서 거짓일 명제라는 걸 증명해내야 한다. 억겁의 세계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점칠 순 없는 노릇이므로, 그저 현실세계에서만 거짓인 명제라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일종의 낙관적 허무주의에 따른 논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인류는 우주의 137억년 역사에서 잠깐 스쳐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며, 존재 자체에 필연성 또한 없다. 현존하는 우리는 너무도 유약하고 미약하기에 모든 가능세계에서 내가 내린 선택이 거짓이란 것을 증명할 힘이 없고, 우리는 그런 초인이 될 수 없기에 가능세계 어딘가에 살아숨쉬는 가능성을 긍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참과 거짓에 목매달고 사는 일은 어쩌면 부질없다. 유한한 삶, 불확실한 인류의 존재 의의는 가능성으로 긍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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