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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Sep 28. 2020

창의성을 증폭시키는 혁신적 노트정리법

[How to Take Smart Notes], Sonke Ahrens



아마도 2020년 올해의 책이 될 듯. 논문을 써야 하는 연구자나 논픽션 책을 쓰고 싶은 작가들에게 강력추천. 개인적으로는 방황하고 있던 나의 research를 제대로 잡아줄 한 줄기 빛을 만난 듯.  [공부란 무엇인가]가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초보자용 설명서였다면, 이 책은 고급심화반 수준의 공부법을 가르친다. 


이 책의 제목은 그 안의 내용을 절반만 설명한다. 이 책은 “스마트 노트”를 작성하는 것 뿐 아니라, 공부하는 법 전반에 대한 깊고 넓은 생각들을 펼쳐나간다.



나의 생각들이 담긴 카드상자를 만들어라.


이 책에서 설명하는 Zettelkasten기법은 독일어로 ‘slip-box’, 즉 ‘카드상자’를 의미한다. 이 기법은 독일의 사회학자 Niklas Luhmann이 자신의 연구를 위해 고안해 낸 기법이다. 그는 대학원을 다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연구를 시작하여 58권의 책과 수백여편의 논문을 써냈다. 연구의 양 뿐만 아니라 질 역시 뛰어나서, 그가 1997년에 쓴 책 <The Society of Society>는 사회학계 뿐만 아니라 여러 연구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p.15). 그는 뛰어난 생산성의 비결을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카드박스의 공으로 돌렸다. 1998년 그의 사후 그의 Zettelkasten기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자, 그럼 Zettelkasten 기법이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노트를 쓰기만 하면 된다.


1. 임시노트 (fleeting note): 갑자기 생각나는 영감이 있으면 짤막하게 임시노트를 쓴 후 inbox에 넣어둔다. 임시노트는 영구노트를 쓰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 중요: 하루가 지나기 전에, 꼭 임시노트를 토대로 한 관련한 영구노트를 만들고 임시노트를 지워야 한다.


2. 서평노트 (literature note):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을 메모하는 노트를 작성한다. 카트 구석에 서지 정보를 적고, 메모하는 부분의 페이지를 기록한다. 서평노트 역시 영구노트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만, 영구노트를 쓴 다음에도 서평노트는 따로 보관해둔다.

  * 중요: 책을 단순하게 인용할 것이 아니라, 나의 언어와 나의 관심사를 토대로 책의 구절을 “번역”해야 한다.  


3. 영구노트 (permanent note): 가장 핵심적인 단계. 각각의 임시노트와 서평노트를 토대로 영구노트를 작성한다.

   * 노트의 길이는 일정하게 만든다. 한 문단 정도가 적당하다.

   * 실제 글을 쓰는 것 처럼 정교한 문장과 완결된 형식을 사용한다. 

   * 중요: 새로 쓴 노트를 박스 안의 다른 영구노트와 연결시킨다. 아날로그 카드박스의 경우 카드에 숫자를 붙여서 링크기호를 만든다. 디지털의 경우 하이퍼링크를 만든다.

   * 다 쓰고 난 노트는 영구노트박스에 저장한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런데 이 방법이 왜 그렇게 혁신적이라는 것인가? 저자는 이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우리가 암묵적으로 생각하던 공부법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에 글을 쓰기 위해서 취하는 linear한 접근접을 버리고, 유연한 시스템을 만들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의 생각들을 잘 잡아내야 한다.



이해하려면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한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괜찮은 구절을 발견했는데, 이미 그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고 그 옆에 누군가 나와 똑같은 필체로 “통찰력있는 구절”이라고 써 놓은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몇 년 전에 내가 해놓은 일을 완전히 까먹은 것이다. 왜 우리는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을 금세 잊어버리고 마는가?


그 이유는 우리 생각의 조각들이 “조각”들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드는 동맥과 정맥의 비유가 효과적이다 (p.89). 동맥과 정맥의 차이점을 배우면서 동맥은 “유연하고, 혈관벽이 두껍다”, 정맥은 “ 덜 유연하고, 혈관벽이 얇다”고만 배운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금방 까먹게 된다. 하지만 “동맥은 심장에서 바로 나오는 피가 흐르는 통로”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피의 흐름을 “흐르는 물의 압력”과 연결시켜서 생각하게 된다. 그 순간 동맥의 혈관벽이 두껍다라는 사실은 우리가 “외울 필요조차도 없는”, 자연스럽게 아는 사실이 된다. 


"갑자기 떠오른 영감"의 최후

Zettelkasten기법은 이 “연결성”에 초점을 맞춘 기억저장장치이다. 이 박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평소 논문이나 책을 읽을 때도 “기존의 나의 생각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읽게 된다. 내 생각의 문맥context 과 새로운 작업을 연결할 때에만,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제대로 소화하게 되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지 말고 호기심을 쫓아가라.


저자는 Zettelkasten기법을 리서치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GTD(Getting Things Done) method 로 표현한다(p.13). 가장 잘 알려진 시관관리기법 중 하나인 GTD는 머리 속에 있는 모든 복잡한 것을 일단 노트에 적은 후, 그 task들을 자세한 스텝으로 처리하여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기법이다. 한 번에 하나의 task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어 효율성이 올라간다. 


그런데 GTD기법은 연구자들 커뮤니티에서는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다. 나 자신도 GTD를 나름대로 시도해봤지만 딱히 효과가 없었다. 저자는 그 가장 큰 이유를 연구자의 생각은 확실하게 정의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나 역시 ‘해야 할 일’ 목록에 ‘A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기’라고 써놓은 적이 많다. 


연구자들의 생각을 진전시키는 데에는 계획을 먼저 세우는 top-down방식보다 호기심을 우선시하는 bottom-up 방식이 더 효율적이다 (p.115). 저자는 Zettelkasten기법을 통해 카드를 쓸 때, 일단 앞으로 쓰게 될 책이나 논문은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시간이 지나 카드가 쌓이면, 내가 어느 주제에 많은 카드를 썼는지가 보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것이 다음 책이나 논문의 주제가 되도록 하면 된다. 


Adam Grant도 예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https://twitter.com/AdamMGrant/status/956210861214982145


위대한 SF작가 Issac Asimov는 [On Creativity]라는 에세이에서 창의적 생각을 "두 개의 생각을 서로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내일부터 하루에 영구노트를 세 개씩 쓴다면, 일년이면 1000개가 쌓이고, 1000개의 카드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가짓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잃을 것은 없다, 한 번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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