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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자아 superego Nov 15. 2021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너의 이름 공직

의원면직을 꿈꾸며

  나는 지방직 공무원이다. 내가 공무원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나 글로 쓰는 것이나 너무 어렵고 찝찝하다.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그 곳에서도 그저 내가 공무원이라는 걸 전제한 글들은 제법 썼지만 왠지모르게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공무원이 되면서부터 밝히고 싶지 않아졌다.


  입사했을 땐 공무원증을 걸고 자랑하듯이 다니고 싶었으나 지금은 공무원증을 숨기기에 바쁘다.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언제나 불리하니까. 오죽했으면  전화를 받을 때 "반갑습니다. 기미ㅏ어ㅏㅓ입니다"라고 이름을 흘려말하는 버릇도 생겼다.

  나는 지방직 공무원이자 정확히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이다. 전화를 받는 태도는 모양새에서도 좀 더 변화가 생겼다. 귀에 갖다대야할 수화기를 무전기처럼 귀에선 떼고 인사멘트를 시작하는 것이다. 왜냐면 사회복지공무원이 자주 경험하는 첫쌍욕 듣기를 피하기 위해서다. 나름 우리 부모님에게는 귀하게 자라온 내가 왜 시ㅂㄴ이란 소리를 들어야하는지 25살 어린 나이엔 견뎌내기 참 어려웠던 첫쌍욕이었다.


  공무원 면접시험을 볼 때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좋다던 나는 10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신나를 뿌리러 오거나 의자를 집어던져 책상 유리가 다깨지는 사례, 도끼를 들고온다는 알콜릭 수급자, 새대가리 및 인격모독 등의 욕받이가 되는 일 등은 내가 실제 겪은 사례이다. 내 주변 동료들은 더하다. 자신과 상담하고 간 후 자살한 수급자, 수급자와 동료의 폭행시비를 말리려다 고소당한 직원, 들어오자마 뺨부터 때리는 민원까지 정말 공권력이라는 것은 언제 생긴건지 존재하긴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단어이다.


나는 지금 광역시청에서 일하고 있다. 동사무소에서 구청, 구청에서 시청으로 올라갈수록 그런 고된 민원들은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느 선배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내가 소속된 지방은 시청에서 근무하려면 시전입시험을 따로 치뤄야한다. 시전입시험은 광역시 내 구군 직원수에 맞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할당인원이 정해져있었다. 그 당시 나는 1명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구청에 소속되어 있었다.  

 

  시전입 시험은 보고서 작성과 사회이슈에 대한 논술을 작성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운 좋게 시전입 시험에 합격하였고 지금은 그렇게 민원 응대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 시청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에 전입하고 맞이한 더 큰 문제는 고질 민원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것 보다 공무원에 대한 직업과 일에 대한 가치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시청에서 주로 하는 일은 구청으로 복지 관련 예산을 내리고 정산한다. 또한 중앙부처와 복지사업에 대한 이슈에 대해 방향을 잡아 구청에 시달하는 일도 한다. 각종 의회 회기에 따라 행정사무감사를 받고 본예산 예결위 등을 거치며 사업을 평가받고 보고한다. 그뿐 아니라 매일같이 보고서를 작성한다. 사업에 직접적인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출산붐 정책, 포스트 코로나 정책, 매해 구상사업 계획 등 이슈성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보고서는 과에서 사업을 주로 하고있거나 늘 적는 직원이 적는다. 내가 낸 보고서가 정책에 반영될리는 거의 만무하고 그냥 할당제로 의무사항처럼 혼자서 머리를 쥐어짜서 기한 내 제출해야한다. 그리고 보란듯이 당연하게 시간이 지나면 버려진다.


  조직은 가장 조직스럽고 비이성적이면서도 이기적이었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에서도 그렇다. 나는 여느 복지직원들과는 좀 다르게 신생 사업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이유인즉, 내가 관련분야의 박사학위가 있기때문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박사를 받는 동안 이 조직이 나에게 학비 한톨, 차비 한 톨 대준 바는 없다. 그렇다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일을 할 때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일 못하는 직원의 일을 나에게 덮어씌우는 그런게 현실이었다. 해당업무를 쳐내지 못해 나에게 일을 떠넘겼음에도 일 못한 직원에게 그 업무 관련 공무원 표창 추천을 하는 이런 조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졌다. 우리 조직에서 '일 못하는 놈 일 덜어주고, 일 하는 놈에게 일 더 얹어준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잘리지 않기 때문에 철면피 이면서 자기멘탈이 강하고 일 안하는 공무원은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기 유리하다.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진지충처럼 공무원을 왜 하느냐고 물었다가는 '얘 좀 이상한 애 아니야?'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코로나가 한창 초기였던 어느 날 다른 팀 직원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좀 더 버티고 일해서 팀장(시에서 5급)자리에 앉아 결재하는 딱 그까지는 올라가고 싶어", "승진시켜주면(4급정도) 우한에 파견이라도 갈거야" 승진에 목매는, 가치를 그것밖에 둘 일 없는 이 조직이 지긋지긋해졌다.


  올해로 내가 공무원이 된지 12년으로 13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우리조직은 그대로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점차 상급 기관으로 갈수록 멋진 일을 하고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상급기관으로 갈수록 관료제는 더욱 치밀했으며 인간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직에서 그런 것을 찾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더이상 이 곳에서 희망의 노동은 기대할 수 없더라도 절망의 노동은 하고 싶지 않아졌다.


  향후 5년 내 나는 의원면직을 꿈꾸고 있다. 아직 그 갈피를 5년이란 세월을 삼은 것은 나의 자의적 의도와 시간 계획에 따라 퇴직 계획을 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는 억지 환경, 불이익 이딴 것에 굴복해서 그만두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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