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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자아 superego Nov 28. 2021

공무원 인사이동은 악순환보직이었다

 인사이동을 13년 차 공무원 생활 동안 9번 한 공무원의 역마살 이야기

역마살

역마살은 죽을 살(殺)이 붙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좋지 않은 뜻이다. 
장소나 직업에 편히 안정적이게 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심하면 객사하기까지 할 운명이라는 뜻이니 좋은 뜻일 리 없다.
-출처 : 나무 위키 사전 -


사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살이 끼면 죽는 팔자라 했던가. 

공무원은 자칫 돌아다니다가 살이 낄 수도 있는 제도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순환보직! 

보통 공무원은 한 근무지에서 2년~3년 사이 정도의 업무기간이 지나면 다른 업무나 근무지로 이동한다. 순환보직 제도는 직원의 업무에 대한 경험과 시야를 넓히고 리더의 관리 능력을 향상시키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순환보직은 절대 없다. 공무원 사회에서 순환보직은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좋은 자리, 좋은 업무가 있으면 나쁜 자리, 힘든 격무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 존재했다. 빽 있거나 윗사람에게 샤바샤바 잘 한 직원들은 좋은 곳을 계속 순환보직했고, 평범하거나 윗사람에게 찍히거나 휴직했다가 복직하는 사람 등은 힘든 곳을 순환보직했다. 


나는 좀 특이한 인사이동을 겪었다. 13년차 공직생활동안 총 9번의 이동을 했다. 휴직기간 3년 가까이를 빼고 나면 거의 1년마다 이동을 했다고 보면 된다. 한 근무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것은 1년 6개월도 되지 않는다. 나의 첫 임용지는 연고지에서 왕복 50km 떨어진 곳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합치면 왕복 3시간 45분이 걸렸다. 업무는 고되고,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그런 게 사회생활인 줄 알고 묵묵히 견디며 열심히 했다. 어느 날의 출근 길엔 버스 안에서 기절도 했다. 집으로부터 엄청나게 멀었던 출근길에서 처음으로 '살'과 맞이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 인사는 소속구청 인사과에서 고충을 반영해주었고 나는 좀 더 지하철권역에 가까운 주민센터로 발령받았다. 하지만 출퇴근은 합쳐서 여전히 3시간가량 걸렸다. 나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시(市) 인사과에 고충상담을 했는데 나와 같은 고충을 가진 직원이 이미 여섯일곱 명이 되어서 내 순서는 기약이 없다고 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운전면허를 따고, 근무지 근처의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적응이란 것을 하려고 할 때 나는 돌연 집 근처의 구청으로 발령이 나게 된다. 보통 자치구를 옮기게 되면 직원에게 희망 의사를 한 번 더 묻는다고 들었는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집 근처의 구로 가게 되어 버렸다(해당 구에서 나를 8급 승진 안 시키려고 보냈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대학원도 아직 더 다녀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하는데 난감했다. 시에 전화해서 확인하니 고충과 전보신청을 취소하지 않으면 본인의 희망이라 여기고 갑자기 그렇게 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부터 시의 업무체계를 짐작했어야 하는 건데...)


나는 집 근처의 구로 전입하게 되었지만 구 안에서는 업무가 가장 힘들고 집에서 먼 거리의 주민센터로 발령이 났다. 새로 온 전입자에게 힘든 격무지를 대놓고 배치시키는 것은 예상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곳은 이전에 근무하던 자치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원 수나 수급자 수가 적었지만 강도 높은 사건들이 제법 있었다. 알콜릭 수급자가 주민센터로 찾아와 나에게 의자를 집어던졌고 가까스로 몸은 피했지만 책상 유리가 다 깨지고 나는 그 충격으로 하혈을 했던 경험도 있다. 그뿐인가 어떤 직원과 업무적 갈등을 겪었고 둘 다 9급이었는데 내가 선임이라는 이유로 해당 직원의 업무처리까지 맡게 되는 덤터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의 주민들, 업무, 직원들, 변화된 상황을 적응하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그러다 또 나는 다른 주민센터로 이동을 했다. 이곳은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나 혼자이긴 했지만 일은 할만했다. 힘든 일도 웃음거리로 추억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직원들도 좋았다. 내 공직생활 동안 소중한 인연은 이 근무지에서 다 만났던 것 같다. 주경야독하기도 하고, 업무가 바쁠 땐 주경야경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근무지에서 보냈던 1년 반 동안의 시간은 참으로 좋았다. 그리고 마치 앞으로 힘든 일을 겪게 될 테니 여기서 다 누려라는 어떤 복선처럼,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운수 좋은 날들을 보냈었다. 


그러다 구청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고 이곳에서부터 내 인생은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조직의 쓴 맛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조직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승진을 할 때가 다 되었다는 이유로', '적임자라는 이유로' '휴직했다 복직했다는 이유로' 불리는 만만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희생하고 있는 구조였다. 본인의 승진을 위해 소속 직원을 업무적으로 괴롭히는 팀장, 임신한 직원을 세워두고 독설 하는 여성리더, 직원에게 권한을 주지 않고 자기 멋대로 구는 팀장, 자기 사업이 멋져 보이기 위해 직원들 밥도 못 먹게 하고 야근시키는 동장, 인사와 승진의 우세를 거머쥐기 위한 얌체족들, 소속 직원의 일이 바쁘든지 말든지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부서장의 숙제, 그리고 그 속에서 허덕이는 나 같은 불쌍한 하급직원들. 행여나 자신을 챙겨주겠지 싶어서 기약 없는 기대의 빛 속으로 뛰어드는 하루살이처럼. 


그렇게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옮기면 옮길수록 직원의 업무에 대한 경험과 시야를 넓혀준다던 순환보직은 나를 죽이고 있었다. 발령이 나면 3일 내에 모든 업무와 자리를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 적응하는 척을 하기 위해 한 달은 죽었다 생각하고 야근을 한다. 나는 옮기면 옮길수록 적응이 더 힘들었다. 출산하고 육아를 하고부턴 심지어 모든 면에서 퇴행하는 기분이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였다. 내가 만난 최악의 리더들은 모두 여자였다. 자식을 키워봤을 거면서 임신한 직원을 괴롭히는 리더, 자식이 없는 여성리더는 자신을 거쳐갔던 워킹맘 직원들을 애 때문에 집중 못하는 직원이라고 욕을 해댔다. 이렇게 기본적인 성감수성과 배려가 없는 조직에 환멸이 느껴졌다. 환멸이라는 부정적 감정은 내 몸의 건강 세포들을 하나씩 때로는 수백 개씩 죽여가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다시 휴직했다. 역마로 인한 살을 피하기 위한 차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의원면직(퇴직)이라는 좀 더 본질적인 방법을 고려해보고 있다. 조직에 있는 이상 나는 순환보직 아니 악순환보직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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