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시현 Nov 07. 2022

두 번째 월급

 

25일이 다가올수록 숙제를 못한 채 등교하는 학생 같은 기분에 쌓이는 것은 엄마와 한 약속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20일쯤부터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드려다 보게 되었다. 나도 내 마음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님 정확한 금액을 정하기 힘들어서 일까? 나는 엄마에게 섭섭한가? 아님 흙수저 내 인생이 서러운 걸까? 등등.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25일은 오고야 말았다. 오전이 지나면 내 통장에는 200 중반의 월급이 찍힐 것이다.

얼마를 인출해야 할까...? 여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엄마, 첫 월급은 그냥 내 마음대로 다 쓸게. 그동안의 나에 대한 보답 같은 거라고 생각해줘. 하지만 두 번째 월급부터는 엄마 도와줄게.

엄마는 너 알아서 해, 대답했다. 대답하는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 나는 좀 더 가벼운 마음일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어학연수나 취업학원 한 번 다닌 적 없이 나는 1년간의 취준 끝에 꽤 괜찮다고 하는 강소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졸업하자마자 한 취업도, 대기업도 아니었지만, 나는 만족했고, 부모님도 좋아라 하셨다.

첫 월급이 통장에 찍힌 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늘 허덕여야만 했던 대학시절, 허덕임에 더해 눈치까지 봐야 했던 취준 기간, 그 시간들을 지나 처음으로 온전히 내 것인 돈이 내 수중에 들어온 것이었다. 학창 시절 알바비를 받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금액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월급은 나에게 한 인간으로서, 한 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존감과 당당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그 기분을 충분히 즐기고 싶었다. 첫 월급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그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었다. 행선지는 아웃렛 매장이었다. 통장에는 첫 월급이 예쁜 숫자로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나선형 오픈된 발코니를 따라 배치되어 있는 매장들의 쇼윈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쇼윈도 안의 옷이나 핸드백, 구두 앞에는 금색 테를 두른 가격표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 내 눈에는 끝의 동그라미 하나를 빼면 이해될 금액들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거나 혹은 당연한 금액인 것 같았다. 같은 시대, 다른 세계 임에 분명했다. 나의 꿈은 저 세계에 들어가는 것일까...?


명품 치고는 중저가에 해당된다는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스카프를 두른 중년의 여자, 연예인 같은 젊은 여자들, 그들과 함께 온 남자들까지, 매장은 중고생들로 붐비는 기프트 샵만큼이나 번잡했다. 저들은 아마도 내 한 달 알바비보다 비싼 가방을 만 원짜리 몇 장 내듯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부류일 것이다. 나는 그 안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고자 노력했다.  

대학 시절 언뜻언뜻 보았던 핸드백이 거기 있었다. 핸드폰과 지갑을 넣으면 꽉 찰 사이즈의 백이었다. 금액과는 혀를 내두를 만큼 부조화스러운 가방이었지만, 그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웃음의 의미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방을 살지 말지도 여러 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못 살게 너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가방쯤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카운터로 가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백과 카드를 내밀었다. 늘 밥상을 차려만 주던 사람이 앉아서 남이 차려 준 밥상을 받는 기분, 이런 느낌이었구나... 맛보지 않은 세계, 알지 못하는 세계, 그 세계에 나도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회사는 아니, 월급은 그걸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임에 틀림없었다.      


두 번째 월급부터는 엄마 도와줄게...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돼 돈을 버니, 고생한 부모님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의 지출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못했었다. 우선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 누구도 보장해 줄 수 없는 나의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해야 한다. 나의 생활비도 있다. 다 계산을 하면 지금 월급이 결코 풍족하지 않았다.

계산이 안 나와 엄마를 도와줄 수 없겠다고 하면 엄마는 뭐라고 할까...? 지금 내 돈을 찢어발기면 나도 엄마처럼 가난해야 해. 이렇게 말하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을 물려받지 않는 방법은? 집에서 뛰쳐나오기. 부모를 버리기. 정답입니다. 대학 때 반 우스개 소리로 친구들과 나누었던 말장난이 떠올랐다. 그 말은 사실임이 분명했다.      


호기롭게 엄마를 도와주겠다고 할 때는 한 백만 원쯤 엄마에게 줄 생각이었다. 그 정도 액수면 엄마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거였다. 하지만 백만 원은 말이 안 되는 액수였다. 50? 50도 없던 수입이 생기는 것이니 집에 보탬이 될 거다. 하지만 50을 빼면 나는 옷 한 벌 사기도 빠듯할 것 같은 계산이 나온다. 30?, 머리가 아팠다.

어제저녁. 벌써 월급날이네, 엄마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말했다. 하지만 나는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처럼 마음이 뜨끔했다.      

나는 한 번도 가난한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 그때는 아마 내가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쩌면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이 답 없는 고민에 빠지게 한 이는 분명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1층 로비에 있는 ATM기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걷기 힘들 정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