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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Jun 09. 2024

ㅁ자 한옥집

  한옥집은 역전앞이나 동해바다처럼 잘못된 표현이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들 말했다. 한옥집, 2층 양옥집, 가겟집, 세탁소집... 우리 집은 ㅁ자형 한옥집이었다.

  막냇동생이 세 발 자전거의 페달을 한참 밟아야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마당이 한가운데 있고, 마당을 ㅁ자 형태로 둘러싸고 방이나 다른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대청마루가 있는 안채가 제일 안쪽에 있고, 안채 옆으로 부엌이 딸려 다른 살림을 할 수 있는 방이 있었다. 그 부엌을 모서리로 돌아 방 세 개가 나란히 있었는데, 방들 앞으로 낮은 툇마루가 죽 깔려 있었다. 나는 오르내림에 불편함이 없는 키 낮은 그 툇마루가 유난히 좋았다. 지금도 그 집을 기억할 때면 낮고 좁아 더욱 정갈해 보였던 그 툇마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멘트를 바른 마당으로 햇살이 따갑게 내려 쬐던 날이었다.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마른 마당 때문인지 날이 더 덥게 느껴졌다. 같은 집에 살아도 잘 눈에 띄지 않던 그녀가 툇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다. 세운 두 무릎을 가슴에 붙여 끌어안고 그 무릎 위에 턱을 올린 채 마당 어느 곳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대청과 방을 오가는 척하며 훔쳐보듯이 그녀를 힐끗거렸다. 그녀는 집 안 누구와도 인사를 잘하지 않았다. 상냥한 모습도 없었다. 간혹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나 따위 존재는 아랑곳도 없다는 듯 무심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의 가족은 부엌 딸린 방과 그 옆의 낮은 툇마루 방 하나에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이 조금 억울할 듯한 부모님과 남동생, 여동생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내 눈에 그들은 모두 어른이었다. 눈매가 사나워 보이는 그녀는 오히려 좀 늙어 보였고 그녀의 동생들은 혈기 짱짱해 보였다. 언젠가 아빠에게 세를 잘못 논 것 같다는 엄마의 푸념 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엄마의 푸념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그녀의 동생인 언니와 오빠는 늘 낮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답지 않은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 더욱이 그 오빠는 내 손에 라면땅이라도 들려있을라치면 나 하나만 하며, 어김없이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늘 양복바지 안으로 셔츠를 잘 갈무리해서 넣고 벨트로 마무리를 한,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으로 할아버지는 마당을 오가거나 전기세나 수도세가 잘못 계산되었다고 엄마에게 와서 따졌다. 그의 복장과 행동이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풀고 싶은 수수꺾기였다. 아무리 봐도 할아버지는 우리 아빠처럼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할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 집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처럼 아침에 출근을 하는 그녀를 본 적은 없었다. 가끔씩 본 그녀는 눈매가 매섭고 눈빛 역시 고와 보이지 않았다. 쉽게 다가가기에는 좀 무서운 얼굴이었다. 그 아래 동생들은 순덩순덩한 모습이 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늘 피곤과 짜증이 서려 있었다.    

  

  대문이 항상 열려 있는 우리 집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 화장품 아줌마, 옆 동네 수양이모. 뒷집 할머니, 우리 집 맞은편 2층 양옥집 아줌마 등등. 그들은 이물 없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 대청에 걸터앉아 엄마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가곤 했는데, 나는 정확히 보았다, 그네들이 그녀의 방이나 돌아서 있는 그녀 가족들의 등을 보며 조용히 머리를 가로젓는 것을. 뒷집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화장품 아줌마는 그녀의 방을 바라보며 복덕방 가서 좀 따져-라고 말하기도 했다. 엄마는 인상을 쓰며 아줌마의 입을 막았다.

  그녀 빼고 모든 가족이 실업자에 하릴없이 노상 마당을 오락가락하니 다들 욕을 하나보다 했다. 하지만 욕을 해도 우리 엄마가 해야 되는 데 왜 이웃들이 엄마보다 더 그 가족을 비난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겨울을 저만치 보내고 봄볕이 세상을 위로하듯 쏟아지던 날, 대문을 밀고 들어서는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본 적이 없는 그 모습은 세상의 것이 아님에 분명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가슴에 벅차오르는 것은 경이로움과 감동이었다. 나는 누가 ‘얼음’을 건 것처럼 놀라움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가 천천히 빨랫줄로 다가갔다.

   형형색색의 셀로판지 같은 한복들이 마당을 대각선으로 가르며 걸려 있는 빨랫줄에 매달려 춤을 추듯 나부끼고 있었다. 너무 많아 셀 수조차 없었다. 그 한복들에는 엄마의 한복 같은 자수나 그림이 없었다. 빛깔이 전부였다. 저고리와 치마가 같은 빛깔인 한복들은 ‘잠자리 날개’라는 말이 조금도 과장 없이 들어맞는 질감이었다. 만화에서나 보던 선녀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우리 집 마당으로 내려온 것만 같았다. 붉은색, 노란색, 연두색, 주황색, 초록색... 황홀경이었다.


  그 황홀경에서 나를 깨운 것은 화들짝 놀란 듯한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엄마는 나를 부르며 대청에서부터 뛰어내려 오더니 내 손목을 낚아채듯 붙잡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버렸다. 한복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는 아쉬움에 자꾸 마당 쪽을 돌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마당에 나가지 못하게 했고, 해가 이울기도 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심술궂은 나무꾼처럼 한복들을 싹 다 걷어가 버렸다.

  그날 저녁 엄마는 저녁상에서 아빠에게 저 집을 내 보내야 되겠다고 말했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내 물음에는 대답 없이 어른들 말에 끼어들면 안 된다고 꾸지람만 했다.     

 

  엄마는 그 집을 내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선녀복 같은 한복들을 몇 번 더 보았으니 말이다. 두 번 째부터는 처음 볼 때의 충격이나 황홀감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빛깔과 한복의 양은 볼 때마다 놀라웠다.

  할머니는 딸의 근로복을 한 번씩 꺼내 통풍을 시킨 것이었다. 마치 무용가의 무용복처럼, 또는 기술자의 기름때 묻은 작업복처럼.      


  사람의 주관이 가치관이나 양심 위의 자리로 올라설 수도 있음을 받아들일 정도의 긴 시간이 흘렀지만,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날이면 셀로판지 같은 한복 사이를 뛰어다니던 황홀경과 자신의 인격을 값으로 가족을 부양했던 그녀의 피곤에 지친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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