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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May 05. 2023

미용실 한원장

  손님이 없는 한가한 오전이었다. 한원장은 소파에 앉아 수건을 개다가 밖에서 들리는 부산한 소리에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순간 한원장은 자신도 모르게 아!- 짧은 숨을 토해냈다.

  미용실 앞 도로 건너편에 고소작업차가 정차되어 있고, 그 차를 이용해 남자 두 명이 플래카드를 걸고 있었다. 고소 작업차와 몇 미터 떨어져 삼근씨가 서 있었다. 삼근씨는 이미 높아 올라간 플래카드를 쳐다보며 손바닥을 위쪽으로 해서, 아래위로 손짓을 하고 있었다. 플래카드를 좀 더 올리라는 뜻 같았다.

  “소망이 엄마 (김혜순)를 찾습니다.”

  소망이 엄마와 김혜순은 검은색, 찾습니다는 빨간색이었다. 무심히 지나가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글씨는 크고 선명했다. 그 옆에 소망 엄마 사진이 있고, 아래에는 그 보다 작은 크기로 전화번호와 ‘사례합니다’가 보였다.

 아파트 주 출입구 2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플래카드가 걸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예사롭지 않은 플래카드를 올려다보았다.  

  삼근씨가 미용실 문 앞에 서 있는 한원장을 알아보고는 이내 성큼성큼 도로를 가로질러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한원장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며칠 전에 한원장을 찾아와 경찰에서 좀 기다려 본 후 가출신고를 하라고 했다며 플래카드라도 걸어야 할까 봐요- 했다. 그녀는 설마 걸까...? 했었는데...

  “정말 걸었네요.”

  “예, 해보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삼근씨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공모한 적이 없지만 그녀는 공모자가 돼가고 있었다. 미친... 그녀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욕설의 대상이 자신인지 소망엄마 잘 구분되지 않았다.   

  삼근씨는 방금 그녀와 헤어진 후 미용실 옆의 마트로 들어갔다. 아직 마트에 있을 터였다. 마트로 뛰어가 그를 붙잡고 다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마음이 떨쳐버리기 힘든 충동처럼 그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좌절할 삼근씨도 걱정이고 자신을 향해 쏟아질 그의 비난과 원망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타인의 인생 한복판으로 엄벙덤벙 들어가는 것이 여전히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속히 삼근씨에게 진실을 말해주기를, 자신이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과 함께 바랄 뿐이었다.

  유리창 너머 검은 봉지를 손에 든 삼근씨가 마트에서 나와 길을 건너고 있었다. 검은 봉지 위로 삐죽이 나온 라면 봉지가 보였다.      


  “플래카드 같은 걸 걸면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을 거예요.”

  어려운 예상이 아니었다. 한원장의 말대로 공중에서 플래카드가 펄럭이던 그 시부터 소망이 엄마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두에게 그랬다. 이 따분하고 지겨운 일상에서 그녀는 마치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았다. 상가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모두가 그녀 이야기뿐이었다. 미용실에서는 머리 손질이 끝난 손님도 가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아 소망엄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소문의 위력에 한원장은 저절로 머리가 휘둘러졌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자신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소망이 엄마가 그 검은색 구형 그랜저에서 내리는 모습을 한원장 말고도 본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의 상상력은 그런 데서는 지나치게 예리하고 명확해서 뒷이야기는 굳이 안 들어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야 말았다.

  사람들의 그 예리함으로 인해 소망엄마가 구형 그랜저와 바람이 났고, 마침내 그 남자와 도망을 갔다-고 이야기하는 데까지는 한원장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후까지 거침이 없었다. 소망엄마가 그랜저와 울산으로 갔대-, 그랜저 고향이 울산이라지, 울산에서 소망엄마를 본 사람이 있대.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팔백 세대가 넘는 이 아파트 단지에서 오직 삼근씨 한 사람뿐이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웃의 이야기를 충분히 즐긴 사람들의 마지막 도착점은, 우습게도 ‘정의’이었다. -소망아빠한테 얘기해 줘야 돼.

  한원장에게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 오랜 단골이고 가깝게 지낸 것 같은데, 왜 얘기를 안 해주는 거예요?  그런 이들에게 한원장은 대답했다. 그쪽에서 해줘요.      


  엄밀히 말하면 한원장은 피해자였다. 그녀가 물어본 적도 궁금해한 적도 없었지만, 소망엄마는, 그 사람이 너무 좋아요, 그 사람이 같이 산으로 가재요. 소망아빠는 이혼은 절대 안 해줄 사람이에요. 같은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 사정을 알게 되었고, 가끔씩은 입바른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손님이고 타인인 소망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한원장은 그 한계를 넘고 싶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때 옆에 있던 아이들이 모의평가고사에서 커닝페이퍼를 돌렸었다. 한원장은 알고만 있을 뿐 가담하지 않았지만, 학생주임은 그녀가 커닝을 계획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짚으며 “네가 더 나빠”라고 했었다.

  내가 더 나쁜 게 맞는 걸까? 어린 한원장은 학생주임의 말에 동의가 안 됐었다.      


  유리창 너머 플래카드는 여전히 소망엄마를 찾는다고 외치고 있었다.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한원장은 피해자와 공모자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녀는 한 번도 원한 적은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삼근씨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당신이 더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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