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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Mar 06. 2023

나는 어떤 사람일까?

“정말 고마워요”

소장은 내 손을 꼭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그녀의 인사는 내가 드린 돈에 비한다면 확실히 과한 것이었다. 사실 몇 십만 원 들여 사료를 사는 것보다 견사 안으로 들어가 배설물을 치우고 바닥을 청소해 주는 일이 더 힘들고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지만 소장은 그런 육체노동의 봉사 때보다 사료를 기부할 때 더 고마워했다. 보호소에서 사료는 그만큼 절실한 문제로 보였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며 A동 청소는 하고 가겠다고 하자 소장은 다시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 오늘은 그냥 여기서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요, 어제 청년 봉사자들이 단체로 와서 다 청소했어요”

  나는 엉거주춤 그녀가 이끄는 대로 소파에 앉아 믹스 커피가 들어있는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작년 겨울에도 미영씨가 기부한 사료 덕을 크게 봤는데, 올해도 또 미영씨 덕을 보네요”

  70을 넘긴 할머니인 보호소 소장은 그냥 개가 좋아서 한 두 마리 맡다 보니 어느 순간 보호소가 되었노라 했다. 그녀는 여러 부작용을 막기 위해 보호소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봉사자나 기부금이 다른 보호소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소장의 사재도 한계가 있으니 늘 허덕이며 운영하는 게 보였다.

  재작년 친정동생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되었다. 동생은 이곳을 소개하며 언니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좀 도와줘봐- 했다. 그때부터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곳을 찾았으니 햇수로 4년이 되어갔다.

  "대부분의 사람이 봉사한다고 오지만 길어봤자 두세 달이야, 미영씨 같이 이렇게 꾸준한 사람은 보기 드물지, 세상에 미영씨 같은 사람만 있다면 정말 살만한 세상이 될 텐데...”

  나는 냉수 들이키 듯 믹스커피를 꿀꺽꿀꺽 삼켰다. 이 만망한 자리를 벗어나려면 빨리 컵을 비워야 했다.      


  오후 늦게서야 가게 문을 열었다. 오전에 보호소를 다녀온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진씨에게 해고통보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이었다.  보호소 가는 날이니 좀 늦게 나오라고 어제 미리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수진씨는 아직 출근 전이었다. 자꾸 출입문으로 눈길이 가며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2 달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2달로 미루어 수진씨 앞으로 바뀔 거라는 기대는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상황에 이끌려 그녀를 너무 쉽게 받아 들인 나의 불찰 탓이다

  “아이 아빠가 병원에 있는데 산재도 안되고... 당장 생계가 막막해서요. 재봉틀은 어지간히 할 수 있어요. 아이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어요.”

  손바닥만 한 수선집에 사람 하나 들이는데 대단한 과정을 거칠 수도 없고 대단한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재봉틀을 할 수 있다고 한, 세 사람 중 생계가 급하다는 그녀를 덜컥 채용했다. 나는 서서히 가게에서 손을 뗄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의 선택에는 곱상한 얼굴에 드세 보이지 않는 그녀의 이미지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수선 들어온 옷의 기존 재봉선을 뜯을 때마다 실수를 했다. 안 뜯어야 할 곳을 뜯거나, 쪽가위나 면도칼을 잘못 써서 옷을 상하게도 했다. 하지만 나를 더 화나게 한 것은 그녀의 다음 태도였다. 내가 이게 아니라 잘못했다고 하면 그녀는 아, 네. 뿐이었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옷을 내게 던져주고는 자리를 떴다. 번번이 이러면 너무 곤란해요, 하자 그녀는 처음이니 실수하는 거죠, 차차 나아질 거예요.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대꾸했다. 그녀의 실수로 내 일은 2배가 되었다. 재봉틀을 돌릴 수 있다는 말도 반은 거짓말이었다.

더 문제는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조는 것이었다. 여기가 끝나면 24시간 식당으로 가 서빙을 한다고 했다. 돈이 한참 들어갈 중고생 아이가 둘이나 되는데 남편은 몸 져 누워 있으니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그녀의 사정이 분명 딱했지만... 그래서 두 달을 견뎠다. 손님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졸고 있는 그녀를 두 달이나 견딘 유일한 이유는 그녀가 딱한 사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입문이 열리며 수진씨가 들어왔다. 나는 작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미진씨 여기 앉으세요.”

  “뭐 할 말 있으세요?”

  재단테이블 앞 작은 의자에 앉는 그녀 앞에 흰 봉투를 내놓았다. 나는 그녀가 별 말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녀는 그 곱상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듯 쏘아보았다.

  “사장님 정말 너무 하시네요. 내가 실수하고 일이 익숙지 않은 거 알고 있지만 내가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요? 그리고 내가 실수했다고 해서 가게에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요. 내 사정 잘 아시잖아요? 아니 개들 불쌍한 건 아시고 사람 불쌍한 건 모르시나요? 개들도 도와주시면서 나는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그녀는 영락없이 채권자였다. 나는 도리없이 도망 다니다 붙잡힌 채무자가 되었다.

  “좀 기다려주시면 저도 차차 일이 익숙해질 거 아니에요? 내가 하루에 두 군데서나 일하는 거 뻔히 아시면서 이렇게 해고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요.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세상에 사장님 같은 분만 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겠어요?”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그녀의 말소리가 아득해지면서 나는 갑자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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