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과 전개에 관하여
이 글은 지난 2년 간 일기장에 남긴 기록들을 발췌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2020년과 2021년 이네요. 2022년엔 지나간 날을 돌아보며 다같이 한바탕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2020년 3월 13일
오늘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지금 코로나의 확산 추세로 얼마나 많은 감염자가 생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하게 될지, 차마 가늠하기가 어렵다. 100년 전 Spanish Flu 때에 500만 명이 감염되었고 5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설마 이 기록을 넘기지는 않겠지?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무기력함이 나를 짓누른다. 우리의 힘으로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을까? 쏟아지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막는 들,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멈출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전 세계의 시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 곧 멈춰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
2020년 3월 20일
지나간 날들에 대한 후회와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원망할 사람을 찾아보지만 주변엔 나보다 불운한 사람이 많아 그저 아랫입술을 꾹 문다. 이럴 때 일 수록 지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
- 내가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 춤 추기, 온라인 강의 듣기, 친구들 인스타 그렘에 친절한 코멘트 달기, 글 쓰기, 기부하기, 낯선 사람들에게 미소 짓기
- 내가 할 수 없는 것: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 일, 미래를 예측하는 일
2020년 3월 22일
설마설마하던 락다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병원 및 약국, 식료품점 등 ‘필수 사업’으로 분류되는 곳들을 제외한 모든 비즈니스가 중단되었다. 룸메이트는 일하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식당에서 챙겨 온 남은 음식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그녀는 트렁크 하나를 들고 텍사스의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다. ‘금방 돌아올게’라는 말을 남기고서. (그녀는 결국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나 되어 돌아왔다.) 창문 밖의 참새들이 유난히도 수다스럽다. 그래, 우리가 조용히 안에 있으니 너네가 살맛이 나나 보구나.
2020년 4월 7일
틱톡을 다운로드하였다. 무심코 올린 요리 영상이 며칠 만에 수십만 건의 페이지 뷰를 올렸다. 이렇게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인가 했지만, 페이지뷰를 신경 쓰다 보니 다음 콘텐츠 제작이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첫 작품에 대박이 난 작가들이 두번째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금 알게 되었다.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 도전을 포기하는 그 마음.
2020년 5월 10일
뉴욕시가 락다운을 시작한 지 벌써 60일이 다 되어간다. 대체 언제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긴, ‘원래대로’라는 게 무엇인지 이제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등장인물이나 줄거리를 전혀 모른 채 영화를 보기 시작한 기분이다. 지금이 도입부일까, 아니면 마지막 펀치라인을 남겨둔 절정의 순간일까.
2020년 5월 25일
틱톡을 지우고 새로운 취미활동을 시작했다. 물구나무서기와 온라인 퍼즐! 세상에 질서가 없고 혼돈이 가득하니, 퍼즐만큼 마음에 위안을 주는게 또 없구나.
2020년 6월 2일
매일 밤 끊이지 않던 앰뷸런스 소리가 잠잠해지자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피부색 때문에 생을 마감했고, 슬프고 화가 난 수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판다믹으로 문을 닫았던 많은 상점들은 이제 자물쇠가 아닌 나무판으로 가게 전체를 덮어버렸다. 연민, 분노, 슬픔, 두려움, 형용하기 어려운 여러 색의 감정들이 엉켜 붙은 날들이 지속되었다. 길에 나가는 대신 나는 지역 단체들에 기부를 하고 인스타그램엔 검은 바탕의 피드를 올렸다. 흑인을 차별하는 너네들 참 못됐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문득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남을 탓하려는 마음이 올라오면 그 손으로 나 자신을 가리켜라. 손가락질을 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너를 향하고 있다.’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 살면서, 인종 차별은 남의 나라 문제라고 생각했다. 2018년을 기준, 한국엔 4.6%의 외국인이 거주한다. 그들의 인권은 누가 지켜주고 있나? 무지도 죄가 될 수 있다.
2020년 6월 4일
뉴욕시에 통금이 생겼다. 해 지기 20분 전에 집에 들어와야 한단다. 통금시간을 어기고 집에 돌아가기를 거부할 경우 경찰에 연행될 수도 있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는 경찰들의 악행에 대한 고발이 끊이지 않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국 드라마 보다도 전개가 빠르다. 내일은 대체 무슨 사건 사고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려나.
2020년 7월 14일
요세미티에 못 간 대신 요세미티를 배경으로 한 영화 ‘Free Solo’를 보았다. 주인공이 말하기를, ‘우리는 어쨌든 매 순간 죽음의 위협에 놓여있고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내가 Free solo를 하는 건 철저한 연습과 계산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나의 죽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순간이다.’
요즘 들어 자꾸만 내 삶이 갑작스러운 엔딩을 맞이하게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 코비드 감염 확진자가 끊임없이 상승세다. 지구의 종말이 찾아오는 것일까? 지구 반대편의 가족과 친구들이 부쩍 그립다. 앞이 깜깜하니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몸이 쳐지고 기운이 없다.
2020년 7월 18일
시간이 많이 남아도니,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덩달아 부쩍 늘었다. 나는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이 삶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하고 싶은 게 확실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좌절한다. 이러려고 멀쩡한 직장 박차고 나와 타지 생활을 시작했나,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아직도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나에게 모난 소리를 자꾸 한다. 그런데 말이야, 맛있는 음식들이 눈앞에 있을 때, 이게 뭘로 만들어진지 묻고,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묻고, 먹어도 어차피 똥으로 나올 건데 뭐하러 먹는 고생을 하느냐고 물어본다고 해서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을까?
인생이 음식이라면,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맛있게 많이 먹으면 그걸로 족한 것 아닐까.
2020년 7월 26일
오늘은 남자 친구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관계가 어떤 엔딩을 맞이할지 알 수 없지만, 종착지가 어딘지 모른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같이 가는 이 길이 즐거우니, 어디든 상관없다. 그가 잘라준 바질을 정성껏 화분에 옮겨 담았다. 어느새 7월의 마지막 주다. 서른의 여름, 매 순간이 찬란히 빛난다. 도전하고 꿈을 꿀 수 있음에 감사하다.
2020년 9월 29일
귀가 좀 멍멍하여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이비인후과가 차이나타운에 있어서, 먼 길을 간 김에 차이나타운과 소포를 구경했다. Canal street을 사이에 두고서 아래쪽은 차이나 타운, 위쪽으로는 뉴욕 패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호가 있다. 코로나가 시작할 때만 해도 유령도시가 되었던 차이나 타운은, 이제는 골목마다 사람들과 활기가 넘친다. 소호의 많은 가게들은 아직도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잦은 시위를 대비해 세워둔 벽장에는 그라피티가 자리 잡았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으니, 굳이 문을 열 이유가 없는 것인지도.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