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리 Sep 17. 2020

미국의 해피아워, 한국 회식과 다른 점

아직도 술 권하나요?


뉴욕에서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에게 내가 경험한 한국의 회식 문화를 얘기해주면 보통 반응이 두 가지다.


첫째로, 내가 하는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현실 부정.


둘째로, 마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측은한 눈빛,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인류에 대한 분노.




물론 나의 회식 문화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유명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이렇다.


1.

처음 부서에 배치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님의 집에서 집들이가 있었다. 한 스무 명 정도가 모였었나?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누군가 신입들의 장기자랑을 봐야 된다며 분위기를 조장했다.


장기자랑? 집에서? 이 노란 조명 아래에서?


설마 진짜 시키겠냐는 마음으로 애써 웃음을 짓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으니 선배 주임님에게 그 화살이 돌아간다.


‘네가 먼저 분위기를 띄워야 애들이 하지!’


주임님은 익숙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주병에 숟가락을 꼽고선 바이브의 바래다주는 길을 열창한다. 같이 입사한 남자 동기에게 그 마이크가 넘겨졌고 그도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 알 수 없는 곡을 열심히 불렀다. 환한 불빛 아래, 그의 목에 세워진 핏대와 이마에서 흐르는 이슬 같은 땀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내 차례가 되어 아는 노래가 없다고 뜸을 들이고 있자니 누군가 외친다. 그럼 춤이라도 추라고. 첫 회사였고, 첫 회식이었다. 회식 분위기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팀장님 집에서 무반주에 춤을 춘 애’가 되었다.


2.

소백산맥이라고 들어봤나? 회식자리에서 나는 처음 알았다. 고깃집에 가서 냉면그릇을 요청하고선, 소주 1 병, 백세주 1병, 산사춘 1병, 맥주 1병을 들이붓는다. 마치 그 빛깔이 냉면 육수 같다. 물론 그걸 한 사람이 다 먹지는 않는다,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이 글을 쓰는 데 속이 좋지 않다.)


3.

야근에 바쁜 우리를 위로한답시고, 매주 최소 한 번은 팀장님, 부장님의 번개 호출이 있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번개 참석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불참 시 배신자라고 눈을 흘기긴 했지만.



물론 공짜로 먹는 고기와 술은 맛있었고, 재밌는 순간도 많았고 회식을 통해 팀원들 간의 사이가 깊어진 것도 있었지만, 득 보다 실이 많았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나에게 야근을 강요하듯 술을 강요하는 그 이상한 문화.


주는 술은 꼬박꼬박 받아먹되 취하지는 말 것, 그것이 그들의 룰이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란다. (야근 수당도 안 주는데? 아, 야근 수당 같은 건 원래 없었지만.)  



미국의 해피아워


한국의 회식과 비슷한 개념으로 미국엔 해피아워라는 게 있다. 정확히 해피아워란 술집에서 사용되는 마케팅 용어로, 평일 6시나 7시 이전에 술을 주문하면 원래 가격의 절반 정도로 저렴하게 주는 반짝 세일 같은 거다. 용어의 사용 범위가 넓어져, 굳이 그런 할인된 술이 아니라도 회사 끝나고 직장 동료들과 술 마시는 것을 모두 해피아워라 한다.


5시에 퇴근해 맥주나 칵테일 한두 잔을 마시고 각자 집에 가는 시간이 7시 이전이다. 물론 저녁을 시키고 그 자리가 길어질 수도 있지만, 지금껏 8시를 넘긴 적은 없다.


그리고 아무도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싶지 않으면 탄산수나 진저에일을 시키면 된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들 자택 근무를 진행하고 있어서, 화상채팅 해피아워가 유행이다. 각자 마실 것을 들고서 정해진 시간에 모니터를 보고 앉아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다.



.

미국에도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금융권 같은 경우는 한국과 비슷한 회식문화가 있을 수도 있고, 한국도 스타트업의 경우, 보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회식 문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어느 한 나라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경험한 두 가지 회식 문화의 차이를 소개하는 것 뿐이니,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범하지 않길 바란다.


나와 비슷한 회식 문화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당신에겐 선택의 권리가 있다. 회식에 가지 않을 권리, 술자리에서 술 마시지 않을 권리.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내가 그 권리가 있는 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나중에 간 이식 해 줄 것 아니면 제발 남들한테 술 강요하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