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으로 뉴욕에서 집 구하기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도착한 이 곳은 13시간의 시차와 사람들의 생김새와 언어가 다르다는 것 빼고는 다를 바가 없었다. 공항 터미널 밖 주차장을 가득 매운 노란 택시가 내가 있는 곳이 서울이 아닌 뉴욕임을 알려준다. 가방 두 개를 싣고서 숙소로 향하는 길, 아직 여름의 습기가 남아있는 미지근한 바람이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다. 다리 건너로 보이는 맨해튼의 야경을 눈에 담고 나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If you can make it in NYC, you can make everywhere.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자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고향, 자기 동네에서 한 딱 가리 한다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부푼 꿈을 안고 모이는 곳. 먹히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는 약육강식의 세계.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뉴욕은 언제나 실패를 모르고 달려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살고자 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집 보다 많으니, 집 구하기가 어렵다고 악명이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 코로나의 여파로 지금은 도시를 떠나는 사람이 많아 사상 최초로 갑을관계가 역전되었으니, 뉴욕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적시일 수가 있습니다.
직장도, 미국에서의 신용도 전무한 나 같은 사람이 집을 구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이미 집을 계약한 사람에게서 Sublet을 하거나, 보증인 (Guarantor)을 구하거나. 보증인은 직계가족 중 연봉이 높은 사람이 있으면 (보통 월세의 80배를 요구한다) '얘가 렌트를 못 내면 내가 대신 낼 것이니 걱정 마소' 하는 개념이다. 돈을 내면 이런 보증인 역할을 대신해 주는 회사들도 있다.
나는 Sublet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미 집을 계약 한 사람의 룸메이트로 살면서 그 사람에게 월세를 내는 식이다.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1년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계약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가 사는 집의 월세가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에 바가지를 쓰기도 쉽다. 실제로 친구 중, 계약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 (Lease holder) 이 룸메이트들에게 돈을 많이 받으면서 본인은 거의 집값을 내고 있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사례도 있었다. Sublet을 하더라도 Streeteasy 같은 사이트를 잘 살펴보면서 그 동네의 시세가 얼마인지 잘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 Sublet이나 룸메이트를 구할 수 있는 사이트로는 헤이코리아, facebook group, Roomi 등이 있어요.
에어비앤비에 2주 간 머물면서 약 20 건의 메일을 보냈으나 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온 곳은 손에 꼽았다. 그들에겐 나의 수중에 돈이 얼마가 있는가 보다도 중요한 게 많았다. 고정적으로 버는 수입이 얼마인지, 이전 살던 집에서의 렌트가 얼마였고 거기서 얼마나 지냈는지, 신용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주로 얼마나 되는지 (나 같은 백수는 이 문항에서 탈락이다).. 혈액형과 가족관계만 안 물어봤지, 내가 지금 잠시 살 집을 구하려는 건지 선을 통해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인지 헷갈리는 판국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조바심이 커져갈 무렵, 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유난히 해가 쨍쨍한 날이었다. 퀸즈 플라자 역 바로 앞의 럭셔리 고급 아파트의 26층에 위치한 그 집은 아름다운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면 유리창이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바비큐를 할 수 있는 루프탑과 영화에서 나올 법 한 고급 서재가 테마로 보이는 라운지가 있다. 맨해튼을 바라보며 러닝머신을 할 수 있는 체육시설도 있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건가? 이렇게 운명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단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있었다면, 나의 방이 될 그곳은 방이 아닌 거실이고, 벽이 있어야 할 곳에 벽 대신 커튼이 있었다는 것.
거실 방? 커튼??
터무니없이 높은 월세 탓에, 방이 1개인 집을 2개로, 2개인 집을 3개로 만드는 방법이 뉴욕에선 흔하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방을 늘리고 있어, 추가 방의 벽 높이나 규격에 대한 상세 규정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런 집을 Flex Apartment라고 한다. 예를 들어 1 bedroom의 월세가 3천 불 이면, 그 집 거실에 벽이나 커튼을 치고 두 명이 그 집에 살면서 월세를 나누어 내는 식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집값과 그럼에도 여기서 살고야 말겠다는 사람들이 찾은 해결책이다.
황홀한 뷰와 어메니티는 나의 혼을 쏙 빼놓았고, 당장에 디파짓을 근처 ATM기에서 뽑아 룸메이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바라본 맨해튼의 야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밝아도 너무 밝구나.. 잠들지 않는 도시의 불빛이 끝까지 내린 블라인드 틈을 뚫고 나의 방 안에 스며든다.
안대를 하나 사야겠구나.
창문을 등지고 돌아 눕는 순간 '끼이이이익---' 귀를 찌르는 소리가 집을 가득 메운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펴봤으나 집 안에서 난 소리는 아니었다. 창문 밖을 보니, 밖으로 굽이 난 철도를 따라 지하철이 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를 100번 정도 반복해 모은 다음 확성기에 대고 재생을 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뉴욕은 지하철이 24시간 운행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친다.
아뿔싸...
지하철의 소음이 멀어질 때쯤 룸메의 사부작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마치 누군가 나의 귀에 대고 기름종이를 만지작 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벽의 중요성을 얕봐도 한참 얕봤다.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가다듬으면서 누구에게 이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 보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내가 한 선택이다. 그렇게 반쯤 뜬 눈으로 첫날밤을 보냈다. 앞으로의 생활이 걱정되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처음엔 견딜 수 없는 괴로움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약간의 불편함이 되었다. 그렇게 커텐 속에서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집을 찾을 때가 되었다. 처음 집을 구할 때 보다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여전히 마땅한 직장이나 수입원이 없었고 신용도도 낮았다. 다른 점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포기할 수 있는 것: 도어맨, 엘리베이터, 세탁기, 체육시설 등의 어매니티
포기할 수 없는 것: 방음이 잘 되는 벽, 동네 분위기, 집 근처 공원과 카페
새로 집을 구하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조건에 딱 맞는 집을, 그것도 원래 내던 렌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센트럴 파크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브라운스톤 아파트였다. 화려한 야경도 엘리베이터도 어메니티도 없지만, 벽이 있고 지하철 소음 대신 참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곳.
처음 집을 구할 땐 '그저 아무 집이나 좋다'라고 생각했다. 까다로운 기준이 있으면 집을 구하기가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몰랐다. 내가 던진 화살이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은 화살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준점이 없어서임을.
확실한 기준을 가지는 것은 가진자의 여유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일 수록 더욱 더 확고한 잣대가 있어야 한다.
다음 집은 햇살이 환히 들어오는 거실이 있는 집이길 바란다. 아, 엘레베이터도 있으면 좋겠다. 가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먼 곳에서 나를 방문하는 친구들의 편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