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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Aug 25. 2020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다.

정말로 안녕!



'과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회사 2층에 있는 커피숍에 과장님을 불러 놓고서 내가 뜸을 들이고 있자니 과장님이 물었다.


'혹시 너 결혼하니?'



25살의 나이로 이 곳에 입사하여 나는 어느새 서른 살이 되어있었다. 주변 친구들의 절반은 이미 결혼을 했고, 나머지 절반은 결혼을 준비하거나 결혼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과장님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이 나이에 결혼이 아니라 퇴사를 하겠노라는, 게다가 퇴사 후 미국에 가서 살아보겠다는 나의 선포를 들은 과장님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대체 왜???'


주변에서 지켜본 퇴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창업을 한 경우, 이직을 한 경우,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경우, 팀원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 결혼이나 출산에 의한 경우, 혹은 집이 어마어마한 부자여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나의 경우 이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퇴사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당황시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퇴사를 하게 된 이유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스무 살의 내가 생각했던 서른 살의 모습과 지금 내 모습은 사실 비슷했다. 그저 졸업 후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게 목표였고, 서른 살에 연봉 5천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은?


돌이켜 보면 분명 나는 열심히 살았다. 누구보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 주말은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자기 계발 활동으로 꽉 채웠다. 그렇게 바쁜 하루가 일 년, 이년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이 길을 왜 가고 있는지 잊어버렸다. 점심시간마다 복권을 긁으며 인생역전을 꿈꾸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순간, 인생이 시시해졌다.


목적지도 모르는 채 주변에서 달리는 걸 보고 나도 덩달아 전속 질주를 해 왔다.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출발한 그곳이었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같은 곳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5년 후, 10년 후에도 나는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게 뻔했다.


의미도 모르는 채 달려왔던 이 경주를 잠시 멈추기로 했다.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고, 스스로 목적지를 정해서 그곳으로 조금이나마 가까이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마어마한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다음 행보가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나의 퇴사 면담은 쉽지 않았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것은 퇴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앞으로의 회사 생활을 편하게 해 주겠다는 회유, 회사 없이는 내가 잘 지내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 급하게 구매한 뉴욕행 티켓을 보여 준 다음에야 겨우 퇴사 날짜를 확정받았다.


마지막 출근을 앞둔 날, 운동회를 앞두고 잠을 자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쳤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잘 살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약 6년간의 회사 생활에 맞춤 표를 찍게 되었다.



정확히 2주 뒤,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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