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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Jul 21. 2022

고3, 사교육비가 0원이 되었다.

내가 많이도 들었던 이야기는 ‘총알 장전’

아이의 고등학교 시절을 위해 총알을 모아두어라.

너무 어릴 때 사교육비 많이 쓰지 말고 진짜 필요할 때 아낌없이 투자하라. 선배맘들의 조언은 하나의 나침반이다.

정말 고3이 되자 나는 전쟁터로 아이를 밀어 넣은 엄마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언제라도 네게 건네줄 총알을 준비해두는 것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고액과외도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전제된 것은 지금까지의 내 방침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원한다면’이었다.

원하지 않는 어떤 것도 아이에게 득이 되었던 적이없다.

억지로 끌고 가는 사교육은 더더욱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억지로 학원에 가서 앉아있는 아이에게 선생님의 말씀은 그저 먼 나라 외국어다. 수학을 싫어했던 나는 한동안 수학 시간에 공상에 빠졌던 것을 기억한다. 공부할 마음이 없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정말 실력 있는 선생님은 어디에 있는 가가 초유의 관심사였던 그때, 아이는 돌연 다니던 학원을 모두 끊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혼자 하겠다는 아이의 통보는 사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이는 다니던 학원을 차례차례 끊었고 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택했다. 우리 때와는 달리 진짜 자율적으로 택해 시간을 정하는 진정한 자율적 학습이었다.

아이는 가장 늦은 귀가인 11시를 택했고 주말에도 오후 5시 가장 늦은 귀가를 선택했다.

기특했지만 나는 사실 내내 불안했었다. 아이를 믿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의심하고 있었다.

사교육 없이 홀로 선 너는 잘할 수 있을까


부모로 사는 일 중 가장 힘든 것은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슬픔도, 지나친 기쁨도 화도 짜증도 아이를 위해 최대한 어른스럽게 표현하는 것

불안함을 감추는 것

내 불안함으로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것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였다.


사실 부끄럽게도 나는 내 감정을 숨기는 일에 몹시도 서툴렀다.

아이가 세 살 때 식탁의자에 서있다가 떨어지며 식탁에 앞니를 부딪히는 사고를 겪었다. 잇몸 속으로 앞니가 들어가는 바람에 영구치 씨앗을 건드렸고 일곱 살에 아이는 영구치를 수술로 끌어내리는 수술을 해야 했다.

아이를 수술실에 들여보내며 나는 목놓아 울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아이를 안심시켰어야 했다. 수술을 마친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엄마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어렸고 서툰 엄마였다. 사실 언제나 그랬다. 첫 아이에겐 너무나도 부족한 초보 엄마였고 여전히 초보 엄마다.

큰 아이는 내게 힘든 내색을 잘하지 않는 편인데 그게 그때의 엄마 때문이 아닌지 가끔 자책하게 된다. 엄마는 눈물도 삼켜야 하는 자리라는 걸 나는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고3 엄마는 아이의 미래를 속으로만 걱정해야 한다.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속으로 되묻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지만 겉으로는 평온해야 한다.

학원도 과외도 없이 홀로 선 너를 나는 믿어줘야 한다.

불안함을 감추고 할 수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잘 될 거라고 응원해야 한다.

이것이 이제 내가 엄마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오로지 인강과 아이만의 시간으로 그렇게 시간이 불안함을 감추고 흘러갔다. 그리고 아이는 유월 모이고사에서 등급이 올랐다. 유월 모이고사는 등급변동이 어려울 거라는 선생님의 안내가 있었지만 아이는 혼자 해냈다.

모의고사 시험지를 맞추며 아이는 짜릿짜릿해했고 아쉬워했다. 이제 공부하는 법을 알겠다는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기타를 치고 밴드부를 사랑하고 축구를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던 아이가 이제 공부만 한다.


얼마나 힘들까 지켜보던 내 마음이,,

믿는다고 했지만 의심했던 내 마음이 그제야 평온해졌다.

내가 기쁜 건 오른 등급 때문만은 아니다. 너의 단단하고 긍정적인 모습에 나는 몇 배 더 기뻤다.


너는 너를 믿고 있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언제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부모인 내가 할 일은 그런 너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


생각보다 공부가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는 너의 말과

아이가 보여준 교실 밖 하늘 사진을 보며 너의 시간을 안도해 본다.

아이가 내민 하늘이 너무 예뻐서 그만 울컥했다.

지켜보는 것이 사랑인 그런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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